<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24. 고려시대 12
<한국>
고려시대
1352 길재의 출생 ①
1356 공주가 스님께 다시(茶匙)를 선물
<현릉칙간 백장청규(玄陵勅刊百丈淸規)>②
왜구들의 극성
1363 문익점의 환국
1365 신돈이 어전에서 음다 ③
1367 이제현의 죽음
1368 공민왕의 다반 기사 ④
1370 하연의 출생 ⑤
<중국>
원대
1354 장가구(張可久) ⑥
1359 홍건적
@ 시내암(施耐庵) ⑦
1362 왕불 ⑧
1364 주원장의 등장
1366 홍희문 ⑨
1368 명(明)의 건국 ⑩
1373 다마사(茶馬司) 설치
@ 한혁, 덕상 ⑪
<일본>
남북조
1368 족리의만 장군이 됨
@ <모귀회사(慕歸繪詞)> <정훈왕래(庭訓往來)> 등의 저서
전대에 고양되어 꽃피었던 차문화는 왕조의 쇠락과 함께 퇴조하게 된다. 더구나 신돈이 권력에 가까이하고부터 불승(佛僧)에 대한 성토와 불교계의 부패상이 문제되어 억불조치가 취해지게 된다. 유학자들의 척불운동으로 부녀자들의 사찰 출입이 금지되니 자연 사찰의 재정과 다풍도 위축된다. 이는 나아가 청자다기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기법의 다기 생산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명의 건국과 동시에 송대에 극에 달했던 차 문화의 틀을 크게 돌려놓는다. 즉 연고차의 생산중단과 산차(散茶) 생산으로 나타난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차문화가 한 걸음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반면에 차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차의 순수성을 살렸다는 면에서는 크게 발전된 일이라 하겠다.
일본도 우야다(宇冶茶)가 자리 잡고 차의 유파도 생기기 시작한다.
① 길재(1353~1419): 문신으로 호는 야은(冶隱). 목은, 포은, 양촌에게서 배웠고 성균관 박사가 됐다. 차를 즐겨 ‘산가서(山家序)’ 등을 남겼다.
② <현릉칙간백장청규>: 공민왕 때 보우 스님에 의해 간행되었다. 우리나라 불가의 다례가 원래 백장청규에 준칙하였으니 먼저 나온 선원청규와 더불어 불가 다사(茶事)의 율(律)로 되었다.
③ 신돈이 왕의 신임을 얻어 궁정 출입이 잦았는데, 어전에서 화제를 나눌 때는 차를 마셨다.
④ 공민왕이 다반제절(茶飯諸節)의 일을 상기시켰다.
⑤ 하연(1376~1453): 조선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차인이다. ‘산승이 보낸 신차를 읊은 시’에서 고형차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⑥ 장가구(1270~1354): 원대 희곡작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금원산곡’ ‘풍입송 객오강’ 등의 글 안에 차 얘기가 자주 나온다.
⑦ 시내암(?~1376): 원명 사이의 소설가로 <수호전>의 작가다. 소설 속에 차 얘기가 몇 곳 나온다.
⑧ 왕불(1362~1416): 명대 서화가로 산수와 묵죽에서는 당대 제일이라 칭한다. 차를 좋아해서 다시 몇 수를 남겼다.
⑨ 홍희문(1282~1366): 원대 시인으로 차를 잘 마셨다. ‘자토다가(煮土茶歌)’ 등의 다시를 남겼다.
⑩ 명 태조 주원장을 송대의 연고차가 제조와 점다에 지나친 인력이 낭비되고, 특수층만이 향유한다고 생각해 산차생산을 지시하고 연고차의 생산을 중지시켰다. 그래서 포다법(泡茶法)이 크게 퍼겨 차의 본령(本領)을 찾게 됐다.
⑪ 한혁: 명대 선비로 시문에 능하고 차를 즐겨 ‘백운천자다시(白雲泉煮茶詩)’로 유명하다.
덕상: 명대 시승(詩僧)으로 차를 좋아해서 많은 다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