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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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 풍요롭게 해주는 나무방생"
식목일 앞두고 만난 토종 소나무의 '대부' 박재봉씨

서울 강남구 대봉산 자락에 소나무 1만여 주를 심고 가꿔온 박재봉씨.


‘민족의 나무’로 추앙받으며 수천 년 이 땅을 지켜온 소나무. 사철 푸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소나무가 당면한 현실은 차라리 암담하다. 한때 우리나라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했던 이 땅의 소나무는 솔잎혹파리와 ‘소나무의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의 창궐, 산불과 수종 갱신 등으로 급격히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산림 중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32%에 불과하며, 특히 재선충이 28개 시군으로 퍼져 소나무 60만 그루가 고사하기에 이르렀다. ‘민족의 나무’가 처한 상황이라고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반면, 우리나라 소나무를 지키고 가꾸는데 20여년을 바쳐온 사람도 있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대봉산 자락에 토종 소나무 1만여 주를 심고 가꾸는 박재봉(60)씨가 바로 그다. 대봉산 자락에서 500년을 넘게 살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박씨는 나전칠기 공장을 운영하던 82년, ‘불현듯’ 소나무에 빠져들었다.

“지금도 ‘그냥’이란 말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요. 휘고 더디 자라지만 그 속에 품위를 간직한 소나무의 모습이 잠재의식 속에 있는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나무를 찾아다니다 보니 지금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를 지키지 않으면 범람하는 외송(外松)에 밀려 이 땅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60~70년대 시행된 녹화사업에서는 발육이 더딘 토종 소나무 대신 리기다소나무와 아까시나무 등을 주로 심었고, 이것이 결국 토종 소나무를 고사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가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그는 88년 가족과 함께 무작정 강원도 속초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산을 오르내리며 솔방울을 주워 심었다. 하지만 싹이 튼 것 중 토종은 극히 일부였다. 생계는 뒷전으로 한 채 토종 솔방울을 찾으러 다니던 그 시절 지인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도 숱하게 들었다.

“소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키우려면 10~20년은 족히 걸립니다. 먹고 살기 힘들 때야 어쩔 수 없이 빨리 크는 나무를 심었다고 하지만, 이제 돈보다 자연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재봉씨는 "소나무는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가지를 내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자란다"며 "욕심없는 소나무를 본받고 싶다"고 말한다.


90년 토종 소나무 묘목 몇 주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묘목을 제대로 키우는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손수 땅을 고르고 묘목을 심었다. 전정가위로 가지를 정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밤늦게 귀가할 때면 손전등을 들고 소나무를 일일이 살핀 후에야 잠이 들었다. 박씨가 토종 소나무 묘목을 얻느라 보낸 10여 년 동안 아내 (60)씨 역시 안 해본 일이 없다. 아침저녁으로 남편을 도와 농원을 가꾸었고 낮에는 고된 식당 일이나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무는 삼대가 망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죠. 강원도에 심은 잡종 소나무라도 캐다 팔자고 했지만 남편은 절대 허락하지 않더군요. 그러니 어쩔 수 있나요? 제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죠.”

박씨는 묘목을 키우는 틈틈이 전국에 유명하다는 소나무를 찾아다니며 연구를 계속했다. 몇 칠씩 소나무를 구경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어떤 소나무가 가장 인상적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지명은 모두 잊어버리고 소나무만 기억한다”고 대답했다. 자칫 “어디에 좋은 소나무가 있다”고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려 나무를 망칠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아예 지명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본래 자리에 심겨져 있으면 모두가 즐길 수 있을 텐데 돈 몇 푼 벌겠다고 그걸 파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 걸음 앞을 내다보지 못하니,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더디지만 꾸준히 자라나는 소나무 묘목들은 대봉산 자락에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새 토종 소나무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서서히 늘어났다. 그가 토종 소나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묘목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얻은 것에 대한 애정은 쉽게 사그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소나무의 생태와 특성을 배려하지 않은 채 과잉보호한 사람들은 “소나무가 너무 쉽게 죽는다”며 다시 그에게 손을 벌렸다.

“10여년 가까이 온갖 정성으로 기른 소나무를 제 손가락 하나 자르는 기분으로 분양한 것인데, 사람들이 생명을 너무 쉽게 생각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소나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안내 책자를 제작해 배포할 계획입니다.”

지금 그의 농원에는 이정숙(33)씨가 소나무

전국을 누비며 묘목을 연구한 박재봉씨는 "한 그루 잘 키우는데 20년이 걸린다"며 "자연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키우는 일을 배우고 있다. 이씨는 “소나무는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가지를 내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조금씩 자란다. 이 점을 본받을 수 있겠냐?”는 박씨의 한 마디에 자신의 삶을 소나무에 걸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평생 소나무를 심고 가꾸며 얻은 스승의 삶의 지혜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도층들도 소나무의 겸허함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박씨의 또 하나의 바람은 불자들이 식목일에 ‘나무방생’을 하는 것이다. 말없이 자라나 자연을 지키고 또 목재와 종이로 쓰임을 다하는 나무를 심는 것이 참다운 방생이라는 뜻에서다. 그 자신도 몇해 전 자녀들과 함께 근처 사찰에 소나무를 심었다.

“방생을 위한 방생이 아니라 자연을 살리는 방생이 되기 위해, 자연과 후손을 위해 우리나라 재래 나무를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평생을 소나무처럼, 부처님처럼 살라고 친구들이 붙여줬다는 그의 호는 ‘여송(如松)’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평생 여여(如如)한 소나무처럼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미소 짓는 박씨는 “작은 것,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 비우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소나무를 키우며 알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의 발에 채이고 바람에 넘어지며, 무심(無心)으로 자라는 소나무에서 인생을 배우는 그에게서 투박하지만 은은한 소나무의 향기가 느껴진다.
글=여수령 기자ㆍ사진=고영배 기자 |
2005-03-28 오전 9:25:00
 
한마디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
(2005-04-02 오전 12: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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