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을 읽다보면 의외로 거칠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 글의 큰 제목처럼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옆구리 쥐어박고 걷어차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도 모자라 활(弓)과 칼까지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른 바 ‘활발발’로 표현되는 무인풍(武人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이른바 무사의 부류라고 할 수 있는 군인, 사냥꾼 등을 포함하여 무인적인 기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선종으로 출가하였기 때문이다.
〈육조단경〉돈황본의 도입부에도 이런 류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혜능 선사가 오조홍인으로부터 의발을 전해받고 남쪽으로 도망치는데 뒤쫓아오는 주인공은 혜명 스님이다.
“약 두어달 걸려서 대유령 고개에 도착하였다. 내가 떠나온 이후에 수백명이 쫓아와서 나를 붙잡아 가사와 발우를 탈취하려고 했던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를 뒤쫓아오다가 중간쯤에 모두 되돌아갔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진혜순(陳惠順:일반적으로 ‘혜명’으로 불림)이 끝까지 쫓아왔다. 그는 일찍이 삼품장군 출신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난폭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중간에서 모두 포기하였지만 거칠고 난폭한 장군출신인 혜명 스님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불퇴전의 정진자세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무인정신이 마냥 ‘무대뽀’인 것은 아니다. 무사풍 역시 법을 위한 것일 때만 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혜명 스님도 혜능 선사가 던져버린 가사와 발우를 참으로 가진다는 것은 ‘힘’이 아니라 ‘법’임을 그는 알았다.
‘이렇게 멀리까지 뒤쫓아 온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발우와 가사를 힘으로 빼앗으려는 것은 아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법문을 듣고서 완전히 안목이 열린다. 모양없는 가사와 발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혜능 선사는 그 이후에도 법성사의 인종화상 회상에 나타날 때까지 15년을 사냥꾼과 함께 살았다. 선가에서 사냥꾼을 대표하는 인물이 석공혜장 선사이다. 그는 수렵이 본업이었다.
어느 날 사슴을 쫒다가 마조 선사를 만나 법문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활을 버리고 출가해 마침내 깨침을 얻었다.
그런데 한 산중의 방장이 되어서도 출신은 속일 수 없었는지 상당법문을 할 때마다 활(弓) 시위를 당기고는 할(喝)을 하는 것을 한 두번도 아니고 물경 30년 동안 계속하였다.
어느 날 삼평이라는 걸걸한 수좌가 선사 앞에 나타나 ‘쏠테면 쏘라’는 식으로 가슴을 풀어제꼈다.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호적수를 만날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맞장’이었다.
그러자 석공 선사가 활을 버리니 삼평 수좌 역시 괄괄한 큰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화살(殺人箭)이거니와, 어떤 것이 사람을 살리는 화살(活人箭)입니까?”
개떡같은 박제된 법문(死句)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진짜 살아있는 활구(活句)를 내보이라는 말이다.
이 ‘살인전(殺人箭) 활인전(活人箭)’은 ‘칼’이라는 말로 대치하면 그대로 ‘활인검 살인검’이 된다.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칼로 두동강을 내어 모든 시비를 일거에 끊어버린 것은 살인검인 동시에 활인검인 까닭에 반야지검(般若智劍)이 된 것이다.
그것은 파릉 선사에 의한다면 취모검(吹毛劍)이 된다. 가늘디가는 털을 입으로 불어서 칼날에 닿게만 해도 끊어지게 만드는 예리한 칼은 미세한 번뇌까지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반야의 칼이다.
파릉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다.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그런데 그 답변이 너무나 시적(詩的)이다.
“산호가지마다 영롱한 달빛으로 흠뻑 젖은 것과 같지.”
무사체 질문에 역으로 문사풍(文士風)으로 대답하였다. 무(武)가 정법(正法)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그건 한갓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장군출신인 혜명 스님이 나무꾼출신인 혜능 행자 앞에 무릎을 꿇는, 법에 대한 간절함으로 연결될 수 없는 것이다.
하긴 말법시대에는 힘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법 또한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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