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구름 오려서 누더기 깁고>
고현 글 그림
종이거울/1만5천원
일러스트레이터(회화와 디자인 사이에 있는 분야)로 30여년 동안 ‘불교미술의 현대화, 불교 디자인의 개척화’ 라는 나름의 화두를 잡고 살아온 고현 교수(조선대 디자인학부)가 화필 인생 40년을 정리한 책을 펴냈다. 제목은 <흰구름 오려서 누더기 깁고>이다.
이 책은 붓을 잡고 처음 한 일이 사찰의 불화 작업이었다는 지은이의 그림과 불교에 얽힌 인연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재미에다가 불교에 대한 지평까지 넓히게 해준다.
그중 10년전 경기도 화성의 모 비구니사찰에 지은이가 이 절의 탱화 제작과 장엄불사 관계로 출입하면서 느낀 감회는 감동 그 자체다. 이 절에는 와병중인 주지 스님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한 노 스님, 70세가 넘은 할머니 80여명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간병도 하루 이틀이지 장장 8년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소변 받아내며 병상을 지키는 봉사자 스님들을 바라보면서 지은이는 ‘내가 내 부모 한테도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하며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화필삼매(畵筆三昧)’를 통해 이들에게 장엄한 <법화경>의 세계를 시각적(視覺的)으로 펼쳐보이기 위해서다.
지은이는 “불교작업 30여 년에 이번처럼 힘들게 끌고 간 경험이 없었다. 외국 물감회사가 부도가 나서 동일한 물감을 구할 수 없어 전국 화방을 모두 뒤지기도 했다. 또 장마철에 연구실이 비가 새는 통에 그려놓은 절반의 작품을 다시 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힘들고 괴로운 순간마다 이 절에 살고 계신 스님들의 모습이 필력의 원천이 되었다”고 술회한다.
지은이는 아직도 ‘승과 속’이 둘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화필삼매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승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남아있어서인지 이따금 산에 가서 한 철씩은 살아야 새로운 기를 얻어서 내려오곤 한다. 바로 그것이 오늘 고현 교수가 붓을 다시 들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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