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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 해부한 <역사와 이데올로기>

책 <역사와 이데올로기>
서구중심주의는 비단 서양 역사학의 한 흐름이나 경향성이 아니라 우리의 학문과 문화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깊숙하고 폭넓게 드리워져 있는 지우기 힘든 그림자다. 때로는 공개적이고 폭력적 모습으로, 때로는 감춰지고 은밀한 모습으로, 혹은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의 가면을 쓰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중심부를 지배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E.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나 S.아민의 <유럽중심주의>, A.G.프랭크의 <리오리엔트> 등과 같은 연구를 통해 서구 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는 비판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학계는 이러한 저술들에 대한 단편적인 소개에 머물고 있어, 유럽중심주의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정립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이화여대 사학전공 강철구 교수의 <역사와 이데올로기>는 서양 역사학을 지배하고 있는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국내 서양사 분야에서는 처음 이뤄진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강철구 교수의 <역사와 이데올로기>는 서구중심주의나 유럽중심주의를 심정적으로 비판하거나 주관적 관점에서 그 극복방안을 제시하려고한 실험적 성격의 책이 아니라는 데 책의 강점이 있다. 저자는 ‘서양의 역사학이 유럽인의 우월성과 세계지배력 강화를 바로 역사를 통해 확보하고 역사이론과 철학을 통해 일반화하려고 했다’는 가설을 구체적 사료연구 등의 경험적 종합방법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저자는 가설 입증에 이어 서양 역사학의 유럽중심주의 극복의 대안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책이 단순한 역사이론서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저자의 몇 가지 논점에 대해서는 해당 전공학자와의 심도 있는 토론과 비판이 촉발될 수도 있겠고, 또 몇 군데서 보다 세심한 논증과 해명이 요구될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은 서구 중심주의와 그 이론 비판에 선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서양의 역사왜곡이 서양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학계 일반에 확산시킴은 물론 우리 한국인의 역사인식에도 큰 악역향을 미쳐, 우리 스스로 비유럽권과 한국문화를 폄하하게 되는 주구적 태도를 경고하는 대목에 이르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심각성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서양사 내의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 정립과 그 배경’ ‘고고학과 유럽 중심주의’ ‘그리스사 해석의 토대로 놓인 날조된 역사관’ ‘유럽 중세도시에서 자유라는 허울의 이데올로기와 그 정체’ ‘유럽인들의 사악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본성’ ‘식민주의를 지배하는 패권적 서구주의’ 등 7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서양학이 이 땅에 들어 온지 한 세기를 지나는 동안 이제 우리의 모든 학문영역, 특히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서양’이라는 본질어는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우리화’된 서양학에서 부정적 독소조항을 가려내고 반성하는 것은 우리 학계의 참된 과제다. 우리 것을 보편화하기 위해서도 그러하고 서양학을 진정한 학문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와 이데올로기>와 같은 저술이 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자극이 돼 각 주제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고 일반화되기를 기대한다.

<역사와 이데올로기>
강철구 지음
용의 숲 펴냄/2만원

윤병태(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
2005-03-15 오전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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