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22. 고려시대 ⑩
고려의 다풍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졌다. 조정에서도 왕이 차를 상음(常飮)하고 다방을 정비했다. 불가의 스님들이 대부분 차인으로 높은 수양과 참선을 차를 통해 이루려 했으니, 그들의 생활에서 차를 떼고 얘기하기 힘들다. 유학자들은 중국에 다녀오는 이가 많아 자연스럽게 그곳의 다학(茶學)과 다법(茶法)을 익혀와 우리 차문화는 한 걸음 더 발전하게 된다. 이색 같은 이는 아버지를 이어 차를 즐기는 가풍을 일으켰으며, 사사(寺社)에게도 법계를 이어오면서 그들의 다풍을 전승했다.
중국도 원의 조정에서 차에 관한 제도정비를 했으니, 국가재정에 도움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다유국(茶由局)의 설치나 다세 징수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차의 생산증대를 위해 노력했다.
일본도 정치를 하는 무인들이 불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사찰을 중심으로 그들의 차생활이 이루어졌다.
① 원천석: 고려시대 치악산에 은거한 은사(隱士)로 이의차 사백(李宜差 師伯)에게 보낸 다시가 전한다.
② 태고보우(1301~1382): 원에 들어가 석옹청공에게 인가받고 임제종풍의 간화선을 전법했다. ‘수미암에 올라’ ‘무제(無題)’ ‘태고암’ 등의 다시가 전한다.
③ 홍규: 충숙왕의 장인으로 원에 다녀왔으며 다시가 전하다.
④ 나옹화상(1320~?): 법명은 혜근. 원에 가서 지공에게 수참하고 돌아와 청평사, 회암사에 주석했다. 차를 즐겨 ‘적다(摘茶)’ ‘일완다(一椀茶)’ 등의 다시를 남겼다.
⑤ 이색(1328~1396):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이다. 원에 다녀와 정당문학을 역임하고 한산백에 봉해진다. 차를 즐겨 수십여 수의 다시를 지었다.
⑥ 예찬(1301~1374): 시서화가로 차를 아주 좋아했다. 고원경이 쓴 <운림유사>에는 그가 마셨다는 천백석차(泉白石茶)와 고아한 다풍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⑦ 도안(1315~1371): 시인으로 차를 즐겨 ‘성중야직(省中夜直)’ 같은 다시를 남겼다.
⑧ 마치원(1251~1321): 원대 희곡작가로 ‘한궁추’ 속의 여러 곳에 차에 관한 대사를 썼다.
⑨ 원각(1266~1327): 원대 문장가로 시에 능하고 차를 놓아해 ‘자다도(煮茶圖)’라는 작품을 남겼다.
⑩ <화원원진기(花園院震紀)>(1324)에 조신들이 차 모임을 가졌다고 적혀 있다.
⑪ <몽중문답>(1325): 몽창국사가 쓴 책으로 ‘중국인은 양생을 위해 차를 마시고 일본인은 참선을 위해 차를 마신다’고 했다.
<한국>
고려시대
1300 원천석의 출생 ①, 이승휴의 죽음
1301 태고보우 ②
1306 안향의 죽음
1308 근시, 다방의 정액 조정
왕이 신효사에서 차를 마심
1312 근시 다방 회복
1314 서적 5800여 권을 들여옴
1316 홍규의 죽음 ③
1318 정사도의 다시(茶詩)
1320 나옹화상의 출생 ④
1324 안축, 원의 과거에 등과
1328 이색의 출생 ⑤
<중국>
원대
1301 예찬 ⑥
1313 각다비험소, 다유국(茶由局) 설치
1315 도안 ⑦
@ <운선잡기(雲仙雜記)>
1318 강남의 다세(茶稅)를 늘임
1321 마치원의 죽음 ⑧
1327 원각의 죽음 ⑨
<일본>
가마쿠라
1313 투다가 성행
1316 북조고시 집권
1324 음다회를 가짐 <화원원진기> ⑩
1325 <몽중문답(夢中問答)> 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