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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본 경천사지탑의 새 보금자리

수난사 접고 국립중앙박물관 동관(東館) ‘역사의 거리’에서 ‘새 역사’


이전되기 전의 경천사10층석탑.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천사지10층석탑(국보86호)의 수난사에 끝이 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에서 10년간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용산 새 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동관 로비에 둥지를 틀게 된 것.

이를 위해 3월 2일~4일 부재 1차분 65점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으로 옮겨지는 등 이송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거리에 복원된 경천사지10층석탑 가상도.

경천사지석탑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1908년 일제시대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에 의해 불법으로 밀반출됐다가 1918년에 반환됐지만 경복궁 뜰에 방치된 채 40여년을 보냈다.

1960년대 시멘트로 보수돼 세워졌지만 시멘트 부분의 풍화, 산성비, 조류 배설물 등으로 인한 훼손에 구조적인 불안정까지 겹쳐 1995년부터 보존처리를 위해 해체돼야 했다.

처음 탑이 건립된 기원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히다. 이 탑은 원나라에 환관으로 가서 황제의 총애를 받은 고용봉(?~1362)과 원나라 승상 탈탈(脫脫)에게 딸을 애첩으로 보낸, 대표적 친원 세력인 강융(?~1349)의 발원으로 1348년 건립됐다. 1층 탑신에는 원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명문이 남아 부끄러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902년 촬영된 경천사10층석탑.

3월 8일에 찾은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경천사지10층석탑 입주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탑이 복원될 동관 로비 ‘역사의 가로’ 동편 지점에는 지진에 대비해 59cm의 면진대가 설치되고, 그 위에는 포천석으로 제작된 지대석이 놓여 있었다. 형태는 원각사지10층석탑의 것을 따랐다.

면진대는 탑이 실내에 설치돼 지진 발생시 흙의 완충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마련됐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4.5도 지진 발생시 탑의 7·8·9층에 충격이 미칠 가능성이 제기돼 면진대 설치가 결정됐다. 면진대는 8도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해준다. 면진대 제작에 소요된 비용만도 7억이다.

1층 기단부의 명문. 皇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높이 13.5m, 무게 80t에 달하는 탑을 실내에 들여놓기 위해서는 건물 설계상의 배려도 필요했다. 탑 높이를 감안해 탑 설치 지점은 1층부터 천장까지 통하도록 설계됐다. 또 200t까지 견딜 수 있도록 건물 구조도 보강됐다.

동관의 복도격인 ‘역사의 거리’에는 이 탑 외에도 고달사지 석등과 팔부신중상 8점이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유심히 살펴보면 고달사지 석등은 ‘역사의 거리’ 중심축에 있지만 경천사지10층석탑이 놓일 자리는 중심축에서 1m 가량 벗어난 곳에 마련됐다. 여기에는 이 탑을 우리 문화재의 ‘국가대표’로 삼을 수는 없다는 고민이 숨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거리에 마련된 면진대.

박물관 전시과 함순섭 팀장은 “이 탑이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유물이기는 하지만 원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전통양식에서 이탈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라 약간 밀려난 지점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대전)에서 보존처리를 마친 탑의 부재는 세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된다. 3월 2일~4일에 1차로 부재 65점이 이전된 데 이어, 3월 말경에 75점(3·4층부재)이, 나머지는 4월말에 들어온다. 유물관리부 김유식 학예연구관은 “3월말부터 조립을 시작해 5월말까지는 복원 완료 예정이다”고 밝혔다.

서편에서 바라본 역사의 거리. 저 끝쪽에 탑이 세워진다.

◇경천사지 석탑의 미술사적 가치

이 탑은 우리나라 석탑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많이 벗어난 이형(異形)탑이다.

3개층의 기단부와 10개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기단부부터 3층 탑신부까지는 아자형의 사면돌출형 평면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탑이 홀수층으로 구성되는 데 반해, 짝수층인 10층으로 구성된 점도 특이하다. 전문가들은 화엄사상에서 완성을 의미하는 수인 ‘10’에 대한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목탑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 또한 특이하다. 기왓골 표현이나 옥개석 박공면의 현어(懸魚)와 야초(惹草) 등의 정밀한 장식에 목구조 표현을 잘 반영하고 있다.

기단부에 새겨진 용, 사자 등 불교 관련 서수상(瑞獸像)과 1~4층 탑신부의 법화회(法華會), 화엄회(華嚴會), 미타회(彌陀會), 소재회(消災會), 약사회(藥師會) 등 불회상(佛會相) 장면들은 매우 우수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고, 도상의 내용 또한 매우 다양해 당시 불교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박익순 기자 | ufo@buddhapia.com
2005-03-11 오후 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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