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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안 되는 놈이야’ ‘그때 내가 그렇게 안했으면 이 지경이 안됐을텐데…’ 우울증 환자들은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거나 끊임없이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복되는 생각은 결국 우울증을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불교와 상담심리를 접목하여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울한 마음’을 ‘나 자신’과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불교적 ‘연기관’에 따라 원인과 결과를 고찰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명상상담연구소의 원장 인경 스님은 “인간을 다섯 가지 더미(오온)의 집합체로 보는 불교적 관점에서는, 우울증도 감각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불교와 심리치료를 접목하여 연구하는 미국 보스턴 서운사 주지 서광 스님은 “불교에서는 마음, 앎, 인식이 ‘나’와 ‘너’를 구분하는 데서부터 발생한다고 본다”며 “이러한 구분이 ‘내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알고 대상을 정확히 인식하는데 주의를 기울일 것”을 조언한다.
◇우울증, 불교로 치료하기= 서광 스님의 저서 <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유식30송>에서 제시하는 우울증 치료법은 절 수행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의 고통을 108배나 1000배로 떨쳐버린 후 편안하게 누워서 5~6분간 휴식한다. 그리고 이완된 상태에서 명상훈련을 시작한다. 의식 속에 떠오르는 두려움과 불안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전생과 내생, 자신의 죽음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진정으로 타인을 위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으로 명상을 마무리한다. 이를 통해 나와 타인이 어떻게 연결돼있는지 자각해나간다.
전현수신경정신과원장이 실시하는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에 참가한 우울증 환자들은 온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우울증은 어디서 오나’를 고찰한다. 환자들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주의를 이동하면서 순간순간 몸과 마음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바디 스캔(Body Scan: 몸 훑기)’ 명상을 한다. 이렇게 몸을 살펴보고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자각하고 나면 분노·기쁨·집착과 마찬가지로 우울함 역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에 불과할 뿐’임을 알게 된다.
“아무리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내 기억’의 저장고 안에 우울하고 부정적인 원인이 들어있으면 우울한 기분은 계속해서 들기 마련”이라는 인경 스님은, 우울증도 부처님의 4성제와 같이 ‘고·집·멸·도’에 따라 파악해볼 것을 권한다. 먼저 어떤 ‘원인’으로 인하여 우울증이라는 ‘결과’가 나왔는지를 인과론적으로 고찰해본다. 그 후 자신에게 적합한 명상방법을 찾아 치료해나간다. ‘나’에 대한 생각에 온통 집중돼 있는 환자에게는 ‘나는 누구인가’를 화두로 드는 간화선을 추천한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불안한 우울증 환자는 코를 통해 드나드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여 명상한다. 보폭에 집중하며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하는 걷기 명상법은 괴로운 기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환자에게 적합하다.
◇치유사례= 서울 구룡사에서 진행되는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이나 명상상담연구소의 ‘고·집·멸·도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 중에는 일반병원 정신과를 다니다가 알음알이로 프로그램을 듣고 참가하는 사람이 많다. 2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에 참가한 우울증 환자 서윤화(대학생·가명)씨는 “내가 못나서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며, ‘부정적인 생각’이 ‘나의 참모습’이 아님을 알자 비로소 부정적이고 우울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명상치료는 환자들에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행동양상을 알아차리고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이다. 박민경(주부·가명)씨는 “우울증이 심할 때는 몸이 조금만 아파도 화가 나고 ‘이렇게 된 건 남편이 집안일을 안도와 줬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등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났었다”며 “그러나 명상을 하며 일어나는 감각들을 잘 살펴보자 ‘내가 원망을 해봤자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우울함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은비 기자
△우울증 자가 판별 체크리스트
*진단표 30문항중 14개 이상의 항목에 해당할 경우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14~18개: 가벼운 우울감
일상생활 속에서 가벼운 우울감을 느끼는 정도.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운동 등을 통해 기분전환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
△19~21개: 중증 우울증
병원을 찾아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는 것이 좋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22개 이상: 매우 심각
전문의의 상담과 약물치료가 시급하며 주위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취한다. 경우에 따라 직장을 잠시간 쉬고 치료에 집중한다.
항목 내용 반응
1 쓸데없는 생각들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 예
2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예
3 안절부절 못하고 초조할 때가 자주 있다 예
4 밖에 나가기 보다는 주로 집에 있으려 한다 예
5 앞날에 대해 걱정할 때가 많다 예
6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아니오
7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아니오
8 아침에 기분좋게 일어난다 아니오
9 예전처럼 정신이 맑다 아니오
10 건강에 대해서 걱정하는 일이 별로 없다 아니오
11 내 판단력은 여전히 좋다 아니오
12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건강하다 아니오
13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아니오
14 정말 자신이 없다 예
15 즐겁고 행복하다 아니오
16 내 기억력은 괜찮은 것 같다 아니오
17 미쳐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예
18 별일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진땀이 날 때가 있다 예
19 농담을 들어도 재미가 없다 예
20 예전에 좋아하던 일들을 여전히 즐긴다 아니오
21 기분이 좋은 편이다 아니오
22 앞날에 대해 희망적으로 느낀다 아니오
23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낀다 예
24 나의 잘못에 대하여 항상 나 자신을 탓한다 예
25 전보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때가 많다 예
26 전보다 내 모습(용모)가 추해졌다고 생각한다 예
27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예전보다 힘이 많이 든다 예
28 무슨 일을 하든지 곧 피곤해진다 예
29 요즈음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예
30 이성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있다 아니오
(제공: 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