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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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수행자는 한 끝 차이
박생광ㆍ중광 스님 등 禪에 취한 미술가 50인
이갑철의 <해탈을 꿈꾸며>.
‘예술가는 수행자나 다름없다. 그들은 예술이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진다. 그래서 작가들 대부분은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수행 과정과 동일시한다.’

박영택 경기대 미대 교수(43ㆍ미술평론가)가 선(禪)에 심취한 미술가 50인을 만난 뒤 그들에게 느낀 공통분모다. 박 교수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열정이 성불(成佛)하고자 사찰에서 정진에 힘쓰는 스님들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만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작업의 주제를 설명하는 단어로 인연, 업, 윤회, 순환, 상생 등 다분히 불교적 사유에 해당되는 키워드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최근 박 교수가 펴낸 <나는 붓을 던져도
이일호의 <생과사>.
그림이 된다>는 바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정상급 작가들이라 표현해도 무방한 50인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한 책이다. 특히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소개돼 있어 불자들에게는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는 유명 사찰에서 한번쯤 마주치게 되는 탱화나 불상 조각들을 제작한 작가의 설명과 작품 세계도 담겨 있어 정보 제공의 역할도 함께 해준다. 작가들도 박생광을 비롯해 김광문, 김아타, 김호준, 백남준, 홍선웅 등 근현대 작가들이어서 일종의 ‘근현대 불교작품 100배 즐기기’란 부제를 달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예를들면 속리산 법주사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미륵대불’은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인 김복진씨(1901~1940)가 만든 것이다. ‘미륵대불’은
책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40세라는 젊은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 그가 말년에 제작한 것인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살면서 민족 해방의 꿈을 다분히 초월적인 미륵의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운보 김기창(1914~2001)이 그린 ‘새벽 종소리’는 지은이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화면에 절묘하게 가시화한 작품으로 기억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운보는 이 작품을 발표하며 “충청도의 어느 사찰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종소리에 잠이 깨 절간을 거닐다가 문득 영감이 떠올라 그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보는 알다시피 청각 장애인 화가다. 귀가 어두운 사람이 종소리에 깼다는 사람이 이상해서 지인이 “어떻게 종소리를 들었냐”고 묻자 운보는 얼른 펜을 잡더니 “꼭 보아야만 사물의 실체를 아는 것이 아니요, 꼭 소리를 들어야만 깨는 게 아니다”는 선문답 같은 글을 써놓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들도 등장한다.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천재화가로 꼽혔던 장욱진(1917~1990)은 어느날 자신의 부인에게 초상화라며 작은 불상 모습을 그린 ‘진진묘 보살’을 건넸다고 한다.
서은애의 <생활 십일면 천수관음도>.
특히 작품을 그릴때에는 수행 하듯이 7일 동안 밥 한 숟가락 , 물 한 모금 입에 안대고 날밤을 세웠을 정도로 열정을 바쳤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광기의 예술가로 불렸던 중광 스님(1935~2002)는 항상 무애의 자유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것은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는 평소 스님의 말에서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왼손, 오른 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글을 썼는데 절대절명의 필법을 무시한 채 거꾸로 필순을 진행해도 아름답고 기운찬 글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인생은 공, 파멸’이란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권진규(1922~1973)는 인생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그러한 삶 속에서 산다는 것과 작업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자문하며 작업한 조각가라고 소개한다. 특히 권씨는 말년에 불교를 열심히 신봉했는데 그것은 죽기 직전에도 잘 나타난다. 자살을 결심한 그가 신변을 정리하고 경상도의 어느 절에 내려가 며칠간 묵으면서 친하게 지내던 스님과 마지막으로 많은
오순환의 <만불>.
대화를 나눴을 정도라고 한 다. 또 선을 형상화 하려고 노력했던 조각가 조인구의 삶도 자못 흥미롭다. 출가한 형님을 둔 독실한 불자인 조씨는 번잡한 사사로움에서 벗어나 낮에는 돌을 쪼면서 생각에 잠기고 밤에는 좌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지은이는 소개한다.

이처럼 이 책은 딱딱한 작품 해설이 아닌 구성이 다양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져 있어 미술관련 책이라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장을 덥고 나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근현대 불교작품들을 총 망라해 모두 감상한 느낌이 든다.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
박영택 지음
인연 펴냄/1만5천원


김아타의 <뮤지엄 프로텍터 #039>.

운보 김기창의 <새벽 종소리>.









김주일 기자 |
2005-03-07 오후 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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