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21. 고려시대 ⑨
몽골의 침략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니 나라에서 종교의 힘으로 백성들을 결속시키려 했다. 전대에 성행했던 차문화가 계승되어 사사(寺社)에서는 물론 왕실의 행사에도 헌다나 다례가 빠지지 않았다. 왕의 행차 시에 다상군이 종군해 차에 관한 일체의 시중은 물론 호위 임무까지 수행했다. 또한 차가 일상화되기는 했으나 좋은 차는 귀해, 선비와 승려들 간의 교유에 고급차가 많이 오갔다. 특히 선비나 관료들의 음다기풍이 왕성했던 시기다.
중국은 송의 패망과 원의 건국으로 차에 관한 제도와 관장 기구 및 직책을 새로이 정비해 여러 곳에 전운사(轉運使)를 두고 관리했다. 일본도 대화차가 명성을 얻어 애용되고 다서도 여럿 간행된다.
① 이제현(1287~1367): 문인으로 <익재난고> <소악부> <역옹패설> 등을 지었다. 사선(四仙) 일화가 전하는 묘련사 석지조에 차를 끓여 마셨고 송광 화상에게 보낸 다시가 유명하다.
안축(1287~1348): 문신으로 원의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왔으며 호는 근재(謹齋). 한송정 다헌(茶軒)이나 죽장사를 노래한 시가 <근재집>에 전한다.
박충좌(1287~1349): 문인이 차인으로 그가 지은 다시가 전한다.
② 이곡(1298~1351): 문인으로 한산군에 봉해졌다. 강릉객사에서 읊은 시와 한송정을 다녀와서 쓴 동유기(東遊記)가 있다.
③ 백운대사(1299~1374): 신광사와 홍성사에 주석한 다승이다. ‘직지심경’ 등 다시가 전한다.
④ 원은 징기스칸이 건설한 몽골제국으로, 중국의 차문화가 러시아나 지중해 연안까지 퍼져 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송대의 고아한 다풍이 변질되기도 했다.
⑤ 초기에는 송의 세다제도를 답습했으나 나중에는 각다제를 채택했다. 이 시기부터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했다가 1275년부터 다시 각다제로 돌아간다.
⑥ 양인제: 정부가 다세를 낸 사람에게 차의 판매권을 주는 허가증으로 다인(茶引)과 다유(茶由)가 있었다. 다유는 좀 더 소규모 다상에게 주는 것으로 5년여에 걸쳐 시행됐다.
⑦ 양유정: 영양학자로 <음선정요>에서 자순, 작설, 온상차 등의 산지와 특징, 효과 등을 비롯해 청차, 초차, 향차 등을 끓이는 법을 설명했다.
⑧ 대화차는 이 시대 최고의 차로 막부에 보내졌는데, 그 단위가 섬(石)과 말(斗)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엽차(葉茶)였을 것 같다.
⑨ <끽다왕래>는 현해법사가 쓴 책으로 이 때의 일본차는 모미(도가노오)가 으뜸이고 청견(시즈미)은 말류라고 했다.
<한국>
고려시대
1270 삼별초의 항거
1274 몽고군과 일본정벌
1276 통문관(通文館)을 둠
1279 연등도감을 설치
1281 금자대장경사경소(金字大藏經寫經所) 설치
1283 일연선사를 국존으로 함
1287 이제현, 안축, 박충좌의 출생 ①
1290 왕의 행차에 다방군이 종군
1292 홍군상의 죽음에 향과 차를 보내다
1298 이곡의 출생 ②
1299 백운대사 ③
<중국>
원대
1271 원(元)의 건국 ④
차의 자유매매 허용 ⑤
1276 양인제(兩引制) ⑥
1277 강회각다도전문사를 두다
1279 남송의 멸망
1280 각다도전운사
1288 양회도전운사 설치
강서각다도전운사 설치
1294 철목아(鐵木兒)의 즉위
1296 양유정 ⑦
<일본>
가마쿠라
@ 대화차(大和茶)가 극성 ⑧
1279 수치다상(守治茶商)
@ <끽다왕래>(현혜법사) 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