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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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 사이사이로 부처님 숨결 들리는 듯"
일민미술관서 4월 3일까지 '한국의 고판화전'

보물 제877호 금강반야바라밀경 변상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을 가진 나라. 인쇄문화에 일찍이 눈을 뜬 우리나라는 특히 목판인쇄를 통해 역사와 예술을 표현해 왔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고서(古書)는 주로 목판본으로 제작됐고, 문자든 그림이든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종교에서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불교와 목판화의 발달이 그 궤를 같이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경 목판본 3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직지사 직지성보박물관,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용주사 등 전국 곳곳의 희귀 고판화들을 한데 모은 ‘한국의 고판화전’을 4월 3일까지 연다.

묘법연화경 목판

이번 전시에는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일반에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던 전주 덕운사 제작 <금강경> 판화변상도(1357년 새김 보물 제877호)가 전시된다. 고려시대에는 대장도감 등의 국가 관청에서 불경이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방 사찰에서 만들어진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일민미술관 수석큐레이터 김희령 씨는 “불경 앞면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나란히 형상화한 변상도 역시 보기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고려 대장도감(大藏都監 고려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의 판각업무를 담당하였던 국가기관)에서 제작한 판각으로 조선시대에 찍은 <유마힐소설경>과 <현우경>(1245판),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화엄경>(1251) 판화 변상도 등도 고려시대 진열대에 올랐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여래정례

조선시대 작품으로는 15~18세기의 직지사 소장품으로 중앙과 지방에서 제작된 <묘법연화경>, <석씨원류>를 비롯해 <부모은중경>, <금강경>, <아미타경> 등의 판본이 있다. 1665년 김천 직지사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 변상도와 1796년 수원 용주사에서 간행한 <부모은중경> 변상도는 목판 및 동판과 함께 진열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 같은 불교관련 목판화 이외에도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의 유교판화를 비롯해 ‘화성성역의궤’ 등 궁중 의궤나 반차도의 목판본도 함께 선보인다. 또한 현대회화를 능가하는 구성미가 돋보이는 ‘수선전도(首善全圖)’, 만자문(卍字文)․연꽃무늬 등을 사방으로 촘촘히 새긴 능화판(책표지·보자기 등에 무늬를 박아내는 목판) 전시물 등도 공개된다.
한편, 한국의 고판화전과 함께 열리는 ‘동북아 3국 현대목판화’전에서는 불교를 주재로 목판 작업을 벌이는 현대 목판화가들의 작품도 접할 수 있다. ‘사인암’ ‘쌍계사’ ‘미황사’ 등을 출품한 홍선웅, ‘도피안사전도’를 선보인 류연복 등의 한국 작가 작품과 함께 사찰 그림을 다수 그린 일본의 유명 목판화가 모리무라 레이 등의 판화도 다수 전시돼, 옛 목판화와 비교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02)2020-2055

홍선웅 작가의 쌍계사


∇전시 기획자 이태호 교수(명지대 박물관장)에게 듣는
시기별 목판화 감상포인트


1920년대 한국에서 활동한 독일인 신부 에카르트(Andreas Eckardt)는 ‘한국미술사’(1929)에서 중국이나 일본 미술과 다른 조선 문화의 고유한 유물로 고려 불경과 조선 후기 서적의 목판화를 들고 그 우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나무와 칼의 예술인 목판화는 불경의 역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별로 독특한 예술세계를 드러낸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화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유추되는 석탑 문양의 다라니가 화엄사 석탑에서 발견되면서, 신라때 불경의 삽화로 그려지는 변상도 판화가 제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대장도감의 주관 하에 대장경이 판각되는 등 왕실과 국가의 후원으로 방대한 불경 판각사업이 진행됐기에, 당시 목판화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고려 문화의 귀족적 세련미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붓으로 쓴 사경(寫經)을 개별적으로 제작해 봉헌하는 일이 유행하면서, 불교판화는 사경의 변상도를 방불케하는 정밀함을 특징으로 삼게 된다.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세밀하고 촘촘한 각선(刻線)이 돋보인다.

류연복 작가의 도피안사 전도

11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송 원대 대장경과 구별되는 고려적 요소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목판에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북송 판을 바탕으로 제쟉한 ‘어제비장전’의 경우 험준하고 뾰족한 암산(巖山)으로 채워진 중국본과는 달리, 산 능선을 한결 부드럽게 표현해 흡사 고려 고유의 실경산수화처럼 느껴진다.

이후 <금강경>과 <부모은중경> 등 본격적인 삽화 형식의 판화 불서가 등장하면서 경전 내용을 요약한 그림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성암고서박물관 소장의 삽화본 <금강경>의 경우 상단에는 경문(經文)의 내용을 시각화한 판화가 배치됐고, 하단에는 경문이 수록돼 있다. 그리고 맨 끝에는 ‘호법선신장도(護法善神將圖)’를 넣어 불경의 장엄성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모리무라 레이의 kinkakuji temple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 못지않게 많은 수의 불경들이 제작됐다. 지방 곳곳의 사찰에서 불경 목판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형태는 다양화되지만, 목판 제작이 민간에서 남발된 까닭에 세련미가 떨어지고 묘사도 투박해진다. 고졸한 형태미와 질박한 선 맛은 조선 민예의 감성과 상통한다. 그러면서도 명ㆍ청대의 다색판화를 수용하지 않고 청나라의 동판화도 거부했기에 조선시대 목판화는 단색 선묘의 한국미를 오롯이 간직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는 최고의 예술성을 구현한 목판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정조 때 왕실에서 제작해 용주사에 하사한 <부모은중경>은 조선시대 불경 판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회화성을 드러낸다. 기존의 서술적 표현이 사라지고 모필 선묘의 맛을 최대한 살린 김홍도 양식의 판화 변상도다. 생생한 판각 솜씨는 그 판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5-03-04 오후 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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