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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백일장 산문 부문 대상받은 황동운 군
만해백일장에서 산문 부문 대상을 받은 황동운 군.
“앞으로 우리나라 근 현대사 속에 있었던 일을 포함해 일상생활의 부조리한 면을 꼬집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수의’로 만해백일장 산문부문 대상을 수상한 황동운군(천안중앙고3)은 지난해 만해축전에서 산문부문 차상을 수상했던 경력자이다. ‘수의’는 올해 1월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평소 할머니 냄새가 배이지 않았던 수의를 의아해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조화롭게 표현해냈다.

상금으로 MP3를 사고 싶다는 황군은 김훈 조정래 이인화씨를 가장 좋아하는 3인의 작가로 뽑는다.

“소설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황군은 사범대에 진학해 국어교사로 교단에 서는 것이 꿈이다.

다음은 대상 수상작 전문.


옷-수의


천안중앙고등학교 3학년 황 동 운

바람의 끝에는 독이 있다. 하얗게 눈이 덮힌 겨울산 굽이굽이에서 바람은 으르렁대며 상복입은 사람들을 매섭게 휘감고 있었다. 바람의 독소에 휩쓸린 사람들은 연신 재채기를 했고 맑은 콧물을 들이켰다. 추위를 막기에 상복은 너무나 얇았다. 외할머니께서는 춥지 않으실까...... 아니 이젠 춥지 않으시겠지. 나는 차갑게 엉겨붙는 콧물을 닦으며, 상여꾼들의 어깨 위에 앉은 꽃상여를 바라보았다. 상여의 안에서 외할머니께서는 평소 흡족해 하시던 수의를 입고 계실 것이다. 낮게 가라앉는 상여꾼들의 노랫가락 사이로 마음 속 기억의 오디오가 움직였다.

방안의 분위기는 따뜻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부 내외는 외삼촌을 거듭 치하했다. 치하의 가운데에는 누런 수의가 당당하게 몸을 부리고 있었다. 수의는 죽은 사람이 입는 옷이라고 했다. 그런 수의를 산 부모님에게 내미는 아들은 무엇이고, 그것을 보고 마치 잉어를 구해다 바친 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들은 또 무엇인가. 어린 나는 그 모순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왜 수의를 보시구서 저렇게들 좋아하세요?”

외삼촌의 어깨를 두드리던 엄마는 고개를 돌려 대답하셨다.

“원래 윤달에는... 나이드신 부모님께 수의를 지어다 드리는 거야. 그래야 앞으론 궂은일 없이 앞날이 편안해 지시거든.”

산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 입을 옷을 드려야 앞날이 편안하다..... 이따금 외할머니께서 외우시는 <옴마니반메훔>보다 더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나는 더 묻고 싶었지만 저녁 밥상에 둘러앉은 것 같은 따뜻함에 눌려 입을 열지 않았다.

그로부터 넉달 후, 매서운 겨울바람에 아랑곳 않고 외사촌들과 놀다 집에 돌아와보니 얼어붙었던 살갗이 녹으면서 발갛게 부어올랐다. 부어오른 살들은 마치 속에서 간지럼을 태우듯 참을 수 없이 가려웠다.

“옷을 좀 뜨시게 입지...... 겨울바람에는 독이 있어서, 오래 쐬면 그렇게 가려운 거여.”

부어오른 살을 온돌에 지진 뒤 소금물을 발라주시며 외할머니께선 중얼거리셨다. 소금이 마를 동안, 손버릇이 안좋은 나는 다락이며 옷장을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 다락 깊숙한 곳에서 넉달 전 치하의 중심에 있던 수의를 보았다. 나는 무심코 수의에 코를 댔다.

“할머니, 왜 여기에는 할머니 냄새가 안나요?”

수의에서는 외할머니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가 갖고 계신 모든 것에는 할머니의 냄새가 나는 줄 알았다. 밥을 지으며 흘린 땀냄새, 몸이 안좋은 딸을 생각하며 떨군 눈물냄새,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스미는 숨결의 냄새를, 나는 가까이에 두고 있어도 늘 그리워했다. 어렴풋이나마, 그 냄새는 영원히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아이를 낳으면 거기서 할머니 냄새가 날거여.”

증손자를 본 뒤에 눈을 감으시겠다는 이야기였지만, 어린 나는 깨닫지 못했다.

“ 지금 맡고 싶어요. 왜 이 옷에만 냄새가 안나요. 네에? 지금도 맡게 해주세요.”

철없는 손주의 보챔에 외할머니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호물호물 웃으셨다.

얼마뒤 감주를 들고 방에 들어오신 엄마는 대경실색하셨다. 외할머니께서 수의를 걸치고 이불 속에 누워계셨기 때문이다.
“야가... 왜 여기서만 할미냄새 안나냐구 하길래...할미냄새 나게 해줄라구 그렸지.”

나를 혼내려는 엄마를 피해 나는 외할머니의 등 뒤로 다람쥐같이 잽싸게 숨었다. 외할머니께서는 한 껏 웃으시며 나를 안아주셨다. 외할머니의 가슴에 안겼을 때, 나는 외할머니의 냄새를 물큰 맡을 수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곧게 뻗었던 외할머니의 허리는 ㄱ자로 구부러지셨고 나는 삼나무같이 자랐다. 그리고 죽은이가 입는 수의를 할머니 냄새가 나게 해달라며 산 할머니에게 입힌 못된 손주가 나라는 걸 깨닫고 부끄러워할 만큼 생각도 자랐다.

그런 내가 열아홉살이 되던 해의 첫날, 외할머니께선 증손주를 보지도 못하신 채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이젠 영원히 수의를 입은, 숨이 떠난 사람같지 않게 단아한 외할머니의 얼굴을 보며 나는 호곡을 하지 못했다. 다만 윽윽거리는 목메인 소리를 냈을 뿐이다.

수의 위에 매장포를 두른 외할머니가 묘혈에 내려졌다. 칠성판을 얹었고, 흙을 얹었다. 이윽고 둥근 봉분이 만들어졌다. 그 위에 떼가 입혀졌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숙연한 얼굴로 절을 올렸다. 마당에서는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입으셨던 옷들이 내가 그리워하던 외할머니의 냄새와 함께 태워지고 있었다. 나는 오렌지빛으로 일렁이는 불길과 뿌연 연기를 보았다. 옷이 타는 연기 가운데로 수의가 아닌 환하게 빛나는 선의(仙衣)를 입은 외할머니의 모습이 번져가고 있었다.
강지연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5-03-03 오후 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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