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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에는 어부도 없고 잡을 고기 한 마리 실려 있지도 않다.
그 빈 배에 그러나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허주 스님의 무언(無言)의 그림자다.
빈 배는 그냥 가만히 떠 있지는 않는다. 출렁거리는 물결 속으로, 흔들리면서 늘 춤추듯 떠다니고 있다.
만사(萬事)를, 그 만사의 여러 가지 모든 시름을 태우고 빈 배는 오늘도 떠다니고 있다.
내가 지금 어찌 감히 허주 스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
그는 지극한, 하나의 목석(木石)같은 존재로 나의 뇌리에 인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주 스님은 구 척 장신의 거구다. 그가 가부좌를 틀고 선방 가운데 떡 버티고 앉을라치면, 드넓은 선방이 꽉 차 버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스님은 그처럼 거구이면서도 하루 두 끼 이상은 먹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소식(小食)으로, 조금 밖에 먹지 않는다.
큰 일도 하지 않으면서 밥만 꾸역꾸역 먹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스님의 신조요 신념이다.
그저 육신이 견딜만하면 그것으로 족하고 더 이 상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굽히지 않고 버텨 나가는 것이 그의 정신이다.
빈 배, 허주스님을 향한 어떤 향수같은 그리움으로 하여 나는 지금 이 글을 조금씩 적어내려가고 있다. 그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시 같은 이야기를 가끔씩 내게 들려주곤 하였다.
‘싯달타는 나루터에 이르렀다. 강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싯달타는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그냥 오랫동안 서 있었다.
강을 건너야 저 건너편 언덕에 이르는데, 저기 피안(彼岸)에 이르는데….
싯달타는 생각에 잠겼다. 번뇌와 망상을 벗어나야만 강을 건널 수 있다. 번뇌와 망상은 꼬리를 물고 늘어져 놓아주지 않는다. 녹슬은 사슬처럼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는 고뇌의 흔적들. 싯달타는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서 그렇게 무연히 서 있었다.
저물어가는 강가의 노을 속에서 싯달타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서 있었다. 저 언덕, 피안에 이르는 길은 열려 있지 않다. 길이 있다고 알고 있을 뿐, 그 길이 어디에 있고, 그 길을 향한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문은 열려 있지 않고 잠겨져 있다. 잠겨져 있는 문을 여는 길, 오직 한 가지 그것은 묘법(妙法)이다.
싯달타는 목이 말라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자꾸 자꾸 입 속에 넣는다. 강물은 달고, 어머니의 젖과 같다. 무한한 그리움이, 알 수 없는 사무침이 싯달타의 전신을 휩싸고 돈다.
짙은 황혼 속, 저 건너편 언덕받이에서 머리 흰 노인이 조그만 목선을 타고 노를 저어 싯달타를 향해 다가온다. 노인은 싯달타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그대는 강물을 마시고 있더군. 그런데… 그런데… 그대가 강물에게 해 준 게 무엇이 있는가?”
싯달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냥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두고, 두 사람은 움직일 줄 몰랐다. 싯달타는 어린 부처님이었고, 노인은 당래하생(堂來下生) 미륵불이었다.... ‘
허주 스님, 빈 배.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웃었다. 가만히 스님은 미소지었다. 남해 보리암의 한 철 안거는 끝났다.
허주 스님, 빈 배. 그는 빈 배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그의 자취는 아무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빈 배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망망하게 펼쳐진 남빛 바다, 그 물이랑 속으로 허주 스님은 떠나 버렸다. 내게 알지 못할 많은 의문만을 남겨둔 채 허주 스님은 훌쩍 떠나가 버렸다.
남해 바다, 은빛 노을처럼 반짝이는 물이랑 속으로 스님은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갑신년 동안거 해제가 지난 오늘, 나는 새삼 허주 스님의 행방을 떠 올리며 깊고 그윽한 감회에 젖는다. 그도 어딘가의 선원에서 결제를 맞고 해제를 맞고...
그러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