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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세기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여 다른 인접 문화권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다양한 의학지식들이 티베트 전통의학을 중심으로 한층 세련된 의학체계의 틀을 갖추게 된다. 특히 32대 송첸감뽀(Songsten Gampo)왕 치세(617~650)에 불교와 불교문화는 그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크게 융성하게 된다. 그는 불교신자인 당나라 문성공주와 네팔 티춘공주를 왕비로 맞아 각각 라모체와 투르낭 사원을 건립하고 불교를 널리 유포시켰다. 티베트인들은 문성공주와 티춘공주를 초록 따라와 백색 따라의 화현으로 믿고 있다. 따라는 모든 불보살의 자비의 여성적 표상으로 자비의 보살인 관세음보살의 권솔이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티베트의 수호불로 달라이라마로 화현하신 것이다. 백색 따라는 보호, 평안 그리고 장수를 보증하시고 초록 따라는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고 모든 유정물을 위험에서 구해 주는 일을 주관하신다. 송첸감뽀왕은 토미 삼보타같은 대학자를 인도에 보내 티베트문자를 창제하도록 하였고 티베트의학에 일대 중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티베트의학에 대한 첫 국제회의를 티베트의 삼예 승원에서 개최하였다. 그 국제회의에 송첸감뽀왕은 페르시아, 인도 및 중국과 같은 인접 국가들로부터 수많은 의학자들을 초청했다. 그 때 초청된 의학자 가운데는 페르시아로부터 초청된 갈레노(Galeno)란 의사도 기록되어 있는데, 시대는 다소 일치하지 않으나 고대 그리스의 그 유명한 갈렌(갈레누스)과 동일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예 승원에서의 국제회의를 계기로 여러 전통의 대표적인 의학 논저와 의서들이 새로 창제된 티베트어로 처음 번역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같은 의서의 번역은 티송데첸(Trisong Detsen)왕의 후원아래 다음 세기에도 계속되었다. 8세기에는 티송데첸왕 제위기간동안 본교이던 티베트 국교가 불교로 대체되었다. 그로 인해 티베트에서는 본교의 종교, 문화 및 의학 지식이 억압받게 되었다.
762 년에는 티송데첸왕의 어의 유톡 용텐 곤포(후대 유톡과 비교하여 선대 유톡이라고 부름)가 약초의 골짜기인 콩포에 티베트역사상 최초의 티베트의과대학을 설립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소릭붐시>를 한 문장에 아홉 소절로 개편하고 옛 본교식 제명과 용어들을 불교식으로 바꾸었다. 이 시기 그는 인도와 중국 같은 이웃 국가들로부터 의학 지식을 적극 수용한다. 약사여래가 설하셨다는 <사부의전> 산스크리트 원전이 티베트어로 번역된 시기도 바로 티송데첸왕 제위기간이다. 그때 티베트어로 옮겨진 사부의전은 오랜 동안 삼예 승원의 한 기둥 속에 숨겨져 오다 11 세기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사부의전 <귀시(rGyud-bzhi)>의 찬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톡 용텐 곤포는 후대 유톡과 더불어 티베트사람들에게 약사여래의 화현으로 믿어지고 있다.
티베트의학이 전적으로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기술한 책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티베트는 수 천년동안 자체의 의학지식을 지녀왔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본교 시대와 불교 시대는 서로 다른 티베트의 두 역사적 구획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12세기에는 후대 유톡이 더 많은 연구를 하여 귀지(rGyud-bzhi)를 편찬하였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티베트의학의 표준적이고 가장 권위 있는 의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