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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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ㆍ효당 스님의 독립운동 터전 다솔사

경남 사천 다솔사는 만해 스님과 효당 스님의 자취를 그리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현대 다도의 중흥조로 불리는 효당 스님의 출가본사로 널리 알려진 경남 사천 다솔사(주지 혜일)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만해 스님과 애국지사들의 정신이 차향만큼이나 깊게 서린 곳이다.

3.1절을 맞아 교계 독립운동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만해 한용운 스님과 애국지사들의 은신처였던 다솔사가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했던 비중과 역할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다솔사는 만해 스님을 중심으로 결성됐던 청년운동 조직인 만당(卍黨)의 은신처이자, 독립운동 자금 조달 기구였던 백산상회의 연락소였다. 다솔사와 독립운동과의 인연은 1933년 만해 한용운 스님이 제자였던 효당 스님이 주지로 있던 다솔사로 숨어들면서 시작됐다. 그 이후 남부지역 독립 운동의 본거지가 됐고 시대와 나라의 아픔을 해결하고자 하는 우국지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백산 안희제, 백산상회 대주주인 문영빈, 김동리의 친형이자 당시 동양사상의 1인자 김범부, 만해 스님의 제자로 불교혁신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법린 등 한국근대사를 가꾼 거목들이 그 속에 포함돼 있었다.

다솔사를 은거지 삼아 1930년 20여 명의 청년 불교도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모임이었던 만당도 힘을 얻어 나갔다. 만해 스님이 당수였던 만당은 다솔사를 근거지로 일본 도쿄에 지부를 설치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배척과 정교 분리, 불교대중화를 주장한 만당은 소나무 우거진 숲 속에 위치한 다솔사에서 나라의 독립을 도모해 나갔던 것이다.

만해 스님이 회갑연 후 기념 식수한 세그루의 편백 나무
그러나 다솔사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극소수에 불과해 다솔사의 독립운동사적 의미를 밝혀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비밀결사 조직의 은신처였던 만큼 뚜렷한 자료나 흔적들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흩어진 자료들이나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일화들을 정리하고 만해 스님과 효당 스님의 정신을 품은채 민족의 독립을 위한 공간이 됐던 다솔사의 역사적 가치를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천시청 문화관광계 조영규 계장은 “다솔사가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새롭게 조명하고 연구,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예산이나 자료 부족 등으로 묻어두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솔사 주지 혜일 스님은 “다솔사가 만해 스님, 효당 스님 등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온 정신이 살아있는 도량인 만큼 그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올 곧는 수행도량의 면모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으로 그분들의 큰 뜻을 널리 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천미희 기자 | gongsil@korea.com
2005-02-26 오전 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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