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가비라위국 니구율원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그 때 신앙심이 깊은 마하남은 이런 소문을 들었습니다.
“많은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서 세존을 위해 가사를 짓고 있다. 세존께서 머지않아 석 달 동안의 안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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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남은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서둘러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온 몸에 힘이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예전에 들었던 가르침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조만간 안거를 마치면 부처님은 비구스님들이 지은 가사를 입고 세상을 유행하실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헤어지면 저는 언제나 지금처럼 부처님과 친한 스님들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설령 세존을 보거나 세존을 보지 않거나, 친한 비구들을 보거나 보지 않거나 간에 그대는 오직 다섯 가지 법을 생각하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닦아 익혀야 한다.
마하남아, 바른 믿음을 가져라. 계를 완전하게 갖추어라. 가르침을 열심히 들어라. 항상 베풀어라. 지혜를 완전하게 갖추어라.
이 다섯 가지를 위주로 신앙생활을 하여라.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다섯 가지에 의지하여 여섯 가지 생각하는 법[六念處]을 닦아야 한다.
여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여래를 생각하는 일이다. 여래를 생각할 때에는 여래에게 열 가지 이름이 있음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생각하여라.
둘째는 법을 생각하는 일이다. 여래가 가르친 법을 자세하게 기억하고 생각하여라.
셋째는 승가를 생각하는 일이다. 수행을 충실히 한 수행자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그들이 어떤 수행을 하였는지, 그들에게는 어떤 덕목이 있는지를 기억하고 생각하여라.
넷째는 계를 생각하는 일이다. 생명 있는 자들을 해치지 말고, 주어지지 않은 것은 갖지 말며, 그릇된 욕망에 빠지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아라. 이 다섯 가지를 언제 어느 때라도 기억하고 생각하여라.
다섯째는 보시를 생각하는 일이다. 보시를 하면 인색함을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보시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자기에게 베푸는 것임을 기억하고 생각하여라.
여섯째는 하늘을 생각하는 일이다. 선업을 짓고 선정을 닦으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각하여라.
거룩한 제자로서 앞의 다섯 가지와 뒤의 여섯 가지를 잘 이루면 배운 자취가 남아서 결코 부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잘 알고 볼 수 있으며 잘 결정되어 감로문에 머물 것이다.”(잡아함경 제33권(932경))
석 달 동안 마하남은 참 행복했을 것입니다. 안거 중인 수행자에게 음식을 베푼다는 것은 참으로 큰 공덕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처님께서 자기 마을에서 안거하셨으니 석 달 동안 부처님은 온통 ‘자기 차지’가 되어 수시로 법을 묻고 공덕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거가 끝나 부처님이 떠나시면 이제 누구에게 법을 묻고 어떤 수행을 해야 할지… 그의 난감함이 고스란히 전해옵니다. 우리도 이제 막 동안거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종래 안거는 출가 스님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재가불자들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석 달 동안 스님들의 일과와 거의 다르지 않게 참선을 하는 이들도 많아졌고 기도를 올리거나 또는 염불과 절 수행도 하는 등 그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재가자들의 새로운 신행모습을 만날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석 달 동안이야 약속한 기간인지라 입승 스님의 매서운 경책도 있고, 정해놓은 규칙이 있어 어떻게든 수행을 이어갈 수는 있었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석 달 뒤의 나날이 문제입니다. 꽉 짜여진 일정에서 풀려나 자칫 공들여 쌓아온 수행의 탑을 무너뜨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려를 예감이라도 하셨는지 종정스님께서는 “결제는 스승이 손을 잡아주는 것이요, 해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의지해서 걸어가는 것”이라는 동안거 해제 법어를 베푸셨습니다.
스스로를 의지해서 걸어가는 것이 뭘까 궁금하시면 앞에서 말씀드린 잡아함경의 가르침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열한 가지 사항들이 여러분의 등불이 되고 안내자가 되어 감로문 앞까지 인도해 드릴 것이요, 그렇게 열한 가지를 스승삼아 석 달을 지내다보면 어느 사이 구슬땀 속에서 수행의 참맛을 알게 해 줄 하안거 입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