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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간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건축 이야기


‘현대 사찰건축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안성 도피안사 향적당. 복도를 지나 여러 번
안성 도피안사 향적당을 설계한 건축가 이일훈씨의 수필집.
발길을 꺾고서야 도착하는 향적당의 선방에는 좁은 모서리 창 이외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이 없다.

“어차피 선방이면 벽을 보나 창을 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선방에서 보는 것은 결국 풍경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가 바로 건축가 이일훈이다. 천주교 ‘자비의 침묵 수도원’과 ‘하늘 담은 성당’ 등의 종교 건축을 설계하기도 한 그는 “종교 건축은 항상 ‘여기’라고 하는 장소성과 ‘지금’이라고 하는 시간성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시대정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형 속을 걷다>는 사무실을 이전하며 엄청난 분량의 건축 모형을 부순 후 ‘생각의 집’인 모형에 담긴 자신의 건축관과 건축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지은이가 책에서 공들여 설명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건축철학인 ‘채 나눔’이다. 채 나눔론은 1990년대 지은이가 국내 건축계에 던져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설계방법론. ‘채’란 안채나 바깥채, 사랑채처럼 집채를 세는 단위로, ‘채 나눔론’은 한 덩어리의 집, 한 공간을 여러 채(공간)로 나누자는 주장이다. ‘채 나눔’에 담긴 지은이의 설계 방법론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늘려 살기’가 그것이다.

편하고 효율적인 것만 추구하는 오늘날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집중시킨 가옥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채광과 통풍이 부실하기 쉽고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되도록 동선을 짧게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느림도 택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작을수록 나누자. 덩어리를 나누는 것은 건축에 숨통을 하나 둘 만들어 숨쉬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건축을 통한 사람의 소통이라고 믿는 것이다.”


<모형 속을 걷다>(이일훈 지음, 솔, 9천5백원)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5-02-23 오전 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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