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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대통령' 하충식 한마음병원장
"몸 낮춰 줍고 쓸면 마음까지 깨끗"

청소대통령 하충식 원장이 노란조끼를 입고 한마음병원 앞을 청소하고 있다.


2월 19일 아침 7시 30분. 제법 이른 아침시간에 노란조끼를 입고 손에 집게, 빗자루, 검은 비닐봉지를 든 남자 30여 명이 창원 한마음병원 앞에 모여들었다. 이 남자들은 눈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흩어져 병원 입구부터 병원 인근 도로, 화단,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며 청소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200-300m 떨어진 무료주차장까지 그들의 영역(?)인 듯 연신 허리를 숙여 담배꽁초, 종이 조각 등을 주워 올렸다. 바람이 심해 이리 저리 뒹구는 쓰레기들을 돌아 다니며 주워 올리는 폼이 제법 몸에 익어 보인다. 이 동네 청소를 전담하는 청소부들인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이 남자들의 정체는 청소부가 아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매일 아침 30분만은 일류 청소부로 변신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와 인연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하충식 원장.
이 청소부들은 한마음병원 직원들이고 이들을 대표하는 이가 바로 자칭 ‘청소대통령’ 하충식(46. 산부인과 전문의) 한마음 병원장이다.

금쪽같은 아침 시간을 쪼개 행해지는 한마음병원 직원들의 청소부 대변신은 언제, 왜 시작된 것일까?
“병원을 옮겨오기 전, 상가지역에 병원이 있었어요.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자연 쓰레기도 많았죠. 어느 날 아침 병원으로 출근을 하는데 병원 주변이 너무 더러워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더군요. 가뜩이나 아파서 병원을 찾는 분들에게 도리가 아니다 싶어 청소를 결심했죠.”

9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계속되고 있는 아침 청소는 이렇게 시작됐다. 하원장과 직원들의 청소가 계속되자 동네가 변하기 시작했다. 유흥가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구토물, 가래침이 말끔히 사라졌고, 담배꽁초도 찾을 수 없게 됐다. 지금도 직원들의 손길이 닿은 인근 무료주차장이 전국에서 제일 깨끗한 주차장이라는 얘길 듣는다.

“제일 힘든 게 구토물이나 가래죠. 그러나 자세를 낮춰 더러운 것을 치우면서 겸손과 하심을 배우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알게 돼요.”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 길상화(77세) 보살로부터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과 ‘사람이 그러면 안 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란 하 원장에게 청소는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실천이며 사람이면 당연히 행해야 하는 도리와 다르지 않았다.

“쓰레기가 보이면 줍고, 또 줍는 것, 그것이 제일가는 청소비법”이라는 하 원장과 병원 직원들의 줍고 쓸기 9년째. 그들이 치운 쓰레기의 양은 하루 비료자루 3-4자루로 지금까지 8톤 트럭으로 몇 십대 분량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정치에 나가려고 생색낸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그러나 9년 동안의 변함없는 청소와 한국복지재단 경남지부 부회장, 무료급식소 자문위원 등을 지내며 소외계층을 위해 행하는 하 원장의 아낌없는 보시가 그 오해를 말끔히 씻어냈다.

“우리 병원은 참 착한 병원입니다. 매출 대비 불우이웃돕기 전국 1위, 협력업체에 결제를 가장 잘 해주는 병원입니다. 게다가 청소는 세계 제일이니까 착하다고 할 만 하지요?”

하 원장의 자랑엔 이유가 있다. 10년 전 병원을 개원하고 이듬해 바로 청소를 시작했고 또 한 같은 해 한마음 나눔회를 결성, 전 직원이 사랑의 한 구좌 갖기 운동을 전개했다. 직원 250명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면서 매월 1천만 원이 넘는 성금을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매년 초파일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 200-300명과 함께 대구 우방랜드로 나들이를 가고 있다.
이렇게 어렵고 소외된 이들에겐 후한 하원장이지만 자신의 생활에선 근검절약으로 일관한다. 10년 된 액센트 승용차를 타고 집엔 15년 전 가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돈 안 드는 달리기, 등산, 족구 등은 즐기지만 골프는 사절이다. 비누 조각을 모아 발목 스타킹에 넣어 사용하고, 환경오염을 염려해 샴푸 대신 비누를 쓴다. 아내 최경화(40.소아과 의사)씨와 두 아들 정훈(13), 창훈(9)도 하 원장에 버금가는 근검절약가. 소변 후에는 물을 내리지 않고, 대변을 본 후 변기 물을 내리며 운동에 잠깐 신은 양말은 빨지 않고 햇볕에 잘 말려 2달 정도는 너끈히 싣는다. 9층 건물인 병원에서도 급한 일이 아니면 내려올 때의 계단 이용은 직원들에게 생활화돼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준 종합병원을 시작, 지금은 종합병원으로 키워낸 하원장의 꿈은 최신 설비와 실력 있는 의사를 갖춘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 아픈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지금도 그 꿈을 향한 준비에 한 치의 빈틈이 없는 하 원장은 최고의 병원을 이룬 후에는 1000명 수용이 가능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양로원을 짓겠다고 했다. 노후를 그곳에서 보내며 직원들과 게이트볼도 치고 봉사도 하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법명도 없고, 절엔 이름만 올려놨지만 하 원장 삶의 중심엔 부처님이 있다. 산부인과 의사인 하원장이 최고의 태교로 ‘팔정도(八正道)’를 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매주 일요일 등산길에 무곡사에 들러 전각마다 삼배를 하며 부처님께 ‘스스로에게 거짓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는다.


인근지역의 청소를 마치고 나서 하충식 원장과 한마음병원 직원들은 병원입구에서 "친절히 모시겠습니다"란 구호를 외치며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절에 가서 아무리 기도하고 절을 많이 해도 나쁜 짓하고 마음 나쁘게 쓰면 소용없잖아요? 저는 청소하면서 기도해요. 쓰레기 하나 주울 때마다 우리 병원 오시는 분들 웃으며 퇴원하게 하소서.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하소서. 나를 믿고 따라주는 병원 직원들이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좋은 병원 만들게 하소서.”

청소가 마무리 되면 병원입구에 전 직원이 모여 “친절히 모시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병실을 일일이 돌며 환자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하원장은 “직원들은 마음을 나누는 형제요 뜻을 함께 하는 동지”라고 강조했다. 청소로 창원시문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상금으로 직원들 운동복을 선물하며 공로를 직원들에게 돌렸다. 그가 펴는 ‘친정어머니론’이 직원에 대한 그의 마음을 잘 대변한다. 성공해서 돌아온 딸도 좋지만 실패해서 오는 딸도 감싸 안아 주는 게 ‘친정어머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마음병원에 한번 인연이 되면 웬만해선 떠나질 않는다. 출산, 이사 등의 이유로 떠났던 사람도 다시 오겠다고 하면 최우선으로 받아 줄 정도여서 장기근속자가 많다.

“부족하지만 나를 믿고 따라주는 병원 식구들이 고맙죠. 자제하면서 더욱 노력할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늘 함께 하면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그 날을 꿈꾸면서요.”
글=천미희 기자 사진=박재환 기자 | gongsil@korea.com
2005-02-28 오전 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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