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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흰눈이 내리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흰눈에서 지고의 순결을 느끼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싸인 눈으로부터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나뭇가지를 보기도 한다. 마치 시어에 의해서 세상살이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듯이. 눈으로 새로워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기도 하고 보는 것의 축복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는 것일까. 과학은 보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서양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 초록색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태양 빛이 나뭇잎에 비치면 나뭇잎은 스스로 필요로 하는 빛은 흡수하고 나머지는 반사한다. 따라서 초록색은 나뭇잎으로서는 싫어하는 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빛을 파동의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마치 파도가 퍼지듯이, 빛 역시 파도와 같이 태양에서 지구로 전해진다. 파도에는 물이 높고 낮은 부문이 있는데, 이 사이의 길이를 파장이라고 한다. 태양의 빛이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는 것은 여러 개의 파장을 가진 파동이 모여서 오기 때문이다. 나무가 광합성을 해서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 때 사용하는 빛은 공기 중의 먼지에 흡수되지 않고 나무까지 도달하는 가능성이 가장 큰 파장 긴 붉은 색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보고 느끼고 하는 것 또한 작게는 지구, 크게는 우주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음을 알 수 있다.
눈으로 들어온 빛이 눈동자에 의해서 망막에 초점을 맺게 되면, 망막 뒤의 시신경에 의해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된다. 여러 신경 다발이 다른 색깔들을 분리해서 전달하면, 색, 모습, 운동 정보들이 각기 뇌의 다른 부분에서 조합되어 우리가 보는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시각을 담당하는 뇌는 머리 뒷부분에 자리하고 있는데, 눈과 시신경 다발, 그리고 시각을 담당하는 뇌 뭉치를 떼어서 보면, 원시 초기 생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임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시각이 주는 감각이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에 비해서 우리의 개념 구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연애를 하는 사람은 연인을 보고 싶어서 못 견딘다고 한다. 결코,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냄새를 맡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죽했으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며, ‘Out of sight, out of mind'라 했겠는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이 주는 이미지는 우리가 믿고 있듯이 절대적이지 못하다. 눈과 뇌 집합에 의해서 구성되는 시각 이미지는 극히 제한된 파장, 그리고 면적 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며, 쉽게 착각을 유발한다. 우리의 눈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생존에 적합하도록 세계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금강경 18장, 일체동관분에서는 보는 것의 단계를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으로 나누고 있다. 각각 육체적인 눈, 거룩한 하늘의 눈, 지혜로운 눈, 법을 이해하는 눈, 그리고 깨달은 눈을 뜻한다. 육체적으로 주어진 시각의 한계로부터 더욱 발전해서, 깨닫는 단계까지 가기를 가르치고 있다. 진화의 결과인 육체적인 눈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모양에만 집착하면 존재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장이다.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눈에 보일 때, 이유 없이 마음에 끌리는 모습이 나타날 때, 눈이 만들어 내는 한계성을 되새기도록 하자. 그리고 그 느낌들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주시하는 습관을 붙이다 보면, 어느새 금강경 가르침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