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공동체. 원시 불교가 출발할 때부터 이 둘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이다. 불교공동체 ‘승가(僧伽)’는 진리를 추구하는 평등한 수행자의 모임이었다. 서로 도움을 주는 공동체적 삶은 불교가 수천 년간 번성한 이유이며 장점이다. 그래서 이 같은 불교공동체는 2천5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 ||||
아낌의 지혜로 뭉친
사람들의 식사 풍경
겨울이 막 시작된 지난 12월의 저녁 시간, 대승보살 정신을 산 속이 아니라 고통 받는 대중 속에서 실천하며 청정국토를 일구어가자고 서약한 불자들의 공동체 정토회를 찾았다. 정토회관에서 쓰레기제로 운동 등 환경운동과 북한 및 제3세계 돕기 운동을 하는 정토행자들은 막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요리, 음식물 배치, 설거지 정리까지 그날의 소임을 맡은 정토행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저녁 공양물이 식탁 위에 일렬로 배열되자 정토회 특유의 대중공양이 시작된다. 정토회 공양법은 전통 발우공양과 현대식 식사법을 결합한 것. 형식은 채식 뷔페 식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깔끔하고 정갈한 수행자 정신이 묻어난다. 한 사람씩 적당량의 음식을 접시에 담아 먹고, 마지막으로 숭늉을 접시에 부어 밥알 하나 고춧가루 하나까지 닦아 먹는다.
| ||||
설거지에는 친환경적 방법이 동원된다. 남긴 음식이 없기 때문에 밀가루를 푼 물에 접시와 수저를 담가 기름기를 뺀 후 수건으로 닦으면 곧 끝난다. 매일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지만 음식 쓰레기는 거의 없다. 무·과일 껍데기 같은 것은 다시 반찬 재료로 활용되고, 못 먹는 것은 따로 모았다가 거름이나 정토회가 키우는 지렁이의 먹이로 쓴다. 이것이 바로 ‘쓰레기제로 운동’이다.
정토행자들은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정토행자들은 물질을 아끼고 소비를 억제하는 개인의 노력이 물질 만능의 후기 산업사회를 넘어 ‘청정 불국토’를 가꾸는 원리가 된다고 믿는다. 정토회는 “승가는 불교도만이 아니라 바른 삶의 길에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공동체”라는 불교 공동체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하려 한다.
| ||||
일·수행 함께
타인 위한 보시행은 기본
정토회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실천’이다. 뭐든지 일단 몸으로 부딪쳐 보라는 것이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은 “그냥 한번 해 본다는 생각으로 해라” “어떻게 한다고? 그냥 하는 거다”라는 말로 실천을 권한다.
정토행자의 실천은 바로 타인을 위한 보시행이다. 정토행자는 가정에서 가족을 부처님처럼 대하고 사회에서는 이웃을 내 가족처럼 돌보고 제3세계의 불쌍한 사람을 구하자고 서원했다. 그게 정토회가 일과 수행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이유다. 정토행자들은 “남을 위한 일에서 나를 비우는 ‘무아(無我)’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정토회의 수행법이다.
정토회 산하 불교환경교육원 박석동 사무국장. 서울 정토회관에는 박 국장과 비슷한 실무자 사십여 명과 기타 대중들이 머문다. 그들은 전통적인 승가의 수행을 사회운동과 접목시킨 공동체 생활을 한다. 정토행자의 하루는 새벽 5시 예불과 명상으로 시작된다. 청소와 발우공양을 마친 후 대중공사로 각자 하루 일정을 이야기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소한 것이라도 정토회의 규칙을 위반하면 모두 참회해야 한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야근을 해도 참회의 대상이다. 박 국장도 제4차 천일결사 회향식에 보고할 자료를 만들려고 야근을 했기에 오늘 아침 대중 앞에 참회를 해야 했다.
| ||||
정토회 실무자들은 8시 50분 정토회관 2층의 사무실로 출근, 부서별 ‘여는 모임’을 갖는다. 명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 오후 5시 50분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공지 사항을 말한 후 명상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6시에는 저녁식사를 하고, 모든 정토회관 거주자는 저녁 7시 예불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의 갈등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소된다. 기도와 참선 등 나름의 수행을 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자자와 포살도 한다. ‘마음 나누기’ 시간에는 남을 미워하고 화를 내는 나 자신을 객관화해, 나를 넘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한다.
무소유와 절약을 실천하는 것은 기본이다. 실무자들이 한 달 동안 받는 활동비는 15만원. 그중 5만원은 생활비, 5만원은 보시로 쓴다. 보시내역을 보면 1만원 삼보 수호비, 1만원 시민단체 후원비, 3만원은 매일 1천 원 이상 보시하자는 4차 천일결사를 위해 저축된다. 이토록 내핍의 삶을 실천하기에 “내복을 입어 연료비를 절감하고 종이컵 낭비를 줄이기 위해 자기 전용컵은 해외 출장의 필수목록이다”는 박 국장의 말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3만 8천 평이 넘는 문경 정토수련원 부지에 짓는 실무자들의 숙소는 1인당 공간이 채 2평을 넘지 않는다.
박 국장은 “실무자 생활의 특징은 사업 수행 능력보다 얼마나 생활을 잘 하는가를 중시하는 수행공동체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각자가 모난 개성과 욕심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내가 공동체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면서 실천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원만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 ||||
정토회는 2002년 3월 제4차 천일결사를 시작하며 대중주체의 사회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실무자와 법사는 보조 역할을 맡고 신도들이 주체가 된 것이다. 신도회가 지역 법당의 재정과 운영을 맡고 쓰레기제로 운동, 북한돕기 거리 모금 사업 같은 일의 기획부터 실천까지 책임진다. 신도들의 동참이 있었기에 4차 천일결사 동안 진행한 ‘민족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는 24시간 1천일 정진’에서 매일 24시간 1분 1초를 쉬지 않는 기도릴레이를 완수할 수 있었다. 모든 정토행자들은 ‘천일결사 수행 목표’에 따라 매일 새벽 5시 108배 정진과 기도, 경전 독송, 수행일지 쓰기, 1천 원 이상 보시 등을 실천한다. 수행의 차원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다.
이렇게 신도들의 생각이 개인보다 공동체, 기복보다 나눔을 우선하는 쪽으로 바뀌는 데에는 교육과 수행활동이 큰 기여를 했다. 각 지역의 정토법당과 해외 정토회 모임들은 일반 불자들이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법륜 스님의 법문에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정토불교대학은 불교, 복지, 평화, 환경에 관련된 폭넓은 주제들은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교육한다.
정토회의 또 다른 특징은 ‘보직순환제’에 있다. 천일결사를 마칠 때마다 모든 정토행자들은 자기의 소임을 놓고 초심의 자리로 돌아간다. 박 국장은 정토회가 이런 제도를 실시하는 이유를 “한 나무 아래 3일 이상 머물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 실무자와 봉사자들이 업무에 집착하는 것을 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
모든 문제 나로부터 시작,
연기론이 해결책
공동체의 존재 유무는 전근대, 근대사회를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진행된 산업화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가능한 도시문명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현대문명은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를 인류에게 선사했지만 온갖 문제 역시 산출해 냈다. 바로 이것이 정토회가 불교공동체 운동을 시작한 때의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불교공동체 운동은 어떤 역할을 할까? JTS 이지현 사무국장은 “그것은 ‘나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며 “붓다는 6년 수행을 통해 자기를 변화시키고 담마를 선우(善友)들과 나눠 불교 공동체를 이뤘다. 그리고 불교공동체는 최종적으로 이 세상에 ‘불국정토’를 구현하고자 했다”라고 답했다.
이 곳 사람들은 “ 붓다의 삶 속에서 발견한 삶의 모델은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이라고 말한다. 개인은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해 생활 속에서 맑은 마음을 닦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좋은 벗으로 서로 돕고 화합해 평화로운 사회를 일구고, 자연은 우리 삶의 토대이므로 생명의 근원임을 알아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꾸어 가자는 붓다의 삶이야말로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고 있다. 정토회는 1988년 서울 홍제동에 정토포교원을 연 이래 이런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고 있다.
정토회는 환경문제를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바라본 결과로 생각한다. ‘내 것이므로 내 맘대로 쓴다’는 이기주의적 생각이 문제란 것이다. 단지 쓰레기를 감소시키고 오염물을 관리하는 차원으로는 현대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믿는다.
해결 방안도 단순하다. 바로 연기론적인 해결책이다. 불교환경교육원 유정길 전 사무국장은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나의 가치관을 바꾸고, 붓다의 가르침대로 ‘적게 먹고 아껴 쓰는 것의 행복’을 추구하다보면 낭비가 없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쓰레기제로, 뒷물 쓰기, 일회용품 근절 운동은 불교적인 삶 속에서 나왔다. 통일과 평화, 제3세계 구호 등 활동들도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긴다는 순수한 서원과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했다. 불교 공동체 정신이 확대되면 바로 모든 인류가 내 식구이요 가족이기 때문이다. 인도 등의 어려운 사람들을 진심으로 돕는 것을 통해 내 민족 국가란 경계마저 넘어설 수 있다.
초기 공동체로 더 가까이
‘문경시대’ 활짝
정토회는 2005년 3월 제5차 천일결사에 들어간다. 정토행자들은 더욱 부처님 당시의 승가를 닮으려는 불교공동체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1988년 이래 각종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던 문경 정토수련원에 본격적인 공동체 마을을 꾸리는 것이다.
지도법사 법륜 스님과 대표 유수 스님을 비롯 서울 정토회관 실무자 전원이 문경으로 내려가 활동을 펼친다. 이곳은 출가를 원하는 사람, 기도를 하고 싶은 사람, 봉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무대가 2005년 봄부터 차례대로 만들어진다.
정토회 사람들은 문경수련원 생활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몇 사람에게 그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초기 불교공동체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실천해 재가자 중심 불교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것입니다. 정토회원 모두가 여법한 생활을 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