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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구조대’가 양동마을 간 까닭은?
우리문화 살리는 길, ‘관심’만 있으면

경주 양동민속마을에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벌이는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개발위주 정책과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더욱 본격화된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 추세 속에서 문화유산이 부적절하게 개발돼 고유의 정취를 잃어가는 요즘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재 감시단 ‘우리문화구조대’가 다시 뭉쳤다. 경주양동민속마을(중요민속자료 제189호)을 30억 들여 개발하려는 경상북도의 계획이 혹시나 과도한 개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안동 병산서원 앞 도로 건설 계획 백지화를 위해 마음을 모았던 이들 우리문화구조대(www.munwha119.org)는 1월 18일 정비 계획이 알려지자마자 논의를 시작, 2주가 채 되지 않은 1월 31일과 2월 1일 양일에 걸쳐 양동마을을 답사했다. 그 ‘번개답사’를 동행 취재했다.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고가에 철조 계단, 감동과 실망 교차

1월 31일 유가의 법도와 선비기풍이 5백여 년 이어진 보기 드문 반촌(班村)으로 전통문화가 가장 완벽하게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는 양동마을을 찾아 서울, 울산, 춘천 등지에서 온 10여명의 대원들은 우선 마을의 고가와 초가집들을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 안내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으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이 곳에서 보낸 이석정 옹(79)이 맡았다. 이 옹은 멀리서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혹한에도 불구하고 안내를 자청했다.

가장 먼저 대원들을 맞이한 것은 조선 성종 때 청백리인 우재 손중돈(1463~1529) 선생이 살던 관가정(觀稼亭·보물 제442호). 관가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풍광은 대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또 보물 제412호인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노모를 모셨다는 흥(興)자 형태의 가옥 향단(香壇)은 복잡하고 세밀한 구조로 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그렇게 양동마을의 매력에 빠져들던 대원들은 생경한 모습에 실망하고 말았으니, 철조 계단이 놓인 이원복 가옥, 회벽은 새로 칠해졌으나 건물이 앞으로 기울어져 불안한 상태의 이원용 가옥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서 문제 지점이 쉽게 발견됐다. 곳곳에 비어있는 집들은 방치된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이석정 옹은 예전의 양동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양동마을에 천석꾼이 너덧 집 됐어요. 큰 초상 때는 외지에서 문상객들을 태우고 온 말이 수백 필이 말뚝에 묶여 길가에 쭈욱 늘어선 것이 그런 장관이 없었지요. 이제 그 활기는 다 사라지고 관광객들만 찾으니 아쉬운 거야 어찌 말로 다 합니까.”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300년전 환경서 살라고?

3시간 넘게 마을을 둘러본 대원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주민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마을 정비계획에 대해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위한 자리였다.

문화재 지정 이후 불편한 생활을 감수해야 했던 주민들은 마을 보존의 대의는 인정하면서도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시골에서는 소를 키워 애들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곳은 외양간도 지을 수 없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마을 공동 외양간이라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농사일 하고 귀가하면 목욕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욕실을 지을 수가 없으니 제대로 씻지도 못합니다.”

우리문화구조대원들은 “불편함은 이해하지만 당장의 편리함만 추구하다가 더 큰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며 “조선 중후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이 곳은 엄청난 가치를 갖는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에 바빴다.

대원으로 참가한 서동화(조각가) 씨는 “양동마을은 지금 잘 보존되느냐 다른 민속마을처럼 생명력을 잃고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며 “함께 지혜를 모아 마을도 지키고 주민의 불편함도 해소하는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외관·주민 편의 다 살리는 묘안은?

대화를 마친 후 마을의 토속음식으로 ‘거하게’ 저녁끼니를 해결한 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과도한 정비가 마을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해칠지도 모르고, 주민의 편의만 감안하다보면 마을의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도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 과연 대안은 있을까.

대원들은 먼저 경상북도 도청을 방문해서 받아온 사업계획서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사업계획을 면밀히 검토한 한 대원이 “금년도 사업계획은 주차장 건설과 휴게소(전시장) 건립, 그리고 퇴락 가옥 보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퇴락 가옥 보수는 원형 보존을 뜻하는 것으로 주민들의 불편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주민편의보다는 관광객 편의에 치우친 듯하다”고 말했다.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또 다른 대원은 “전봇대와 전선을 제거해 이 곳에서 영화촬영이 이뤄지게 되면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될 텐데 휴게소나 전시장 건설부터 시작하는 것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다”고 지적했다.

급진적인 주장도 제기됐다. 한 대원은 “마스터플랜이 다양한 입장을 청취해서 마련된 것 같지 않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동 하회마을처럼 고유 정취를 잃고 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며 논의의 초점은 마을의 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주민의 편의도 지향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마을 한 복판에 자리 잡은 교회를 옮겨야 한다는 지적,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한다는 주장 등도 제기됐다.



우리문화구조대 회원들. 사진=고영배 기자.


문화재 지킴이 시민 활동 활발해야

여러 의견을 주고받은 우리문화구조대원들은 답사의 내용을 정리해 답사에 참여하지 못한 대원들과 인식을 공유하는 한편, 정책 입안자들을 만나 그들의 계획을 경청하기로 했다. 또 전문가나 다른 문화지킴이 단체들과 협력해서 양동마을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감시자 역할을 철저히 하기로 다짐도 했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문화재지킴이는 35개 단체 8천여 명. 최근 들어 정부는 이들의 감시자 역할을 달게 받아들이며 시민단체를 문화재 관리자로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문화구조대의 1박 2일간의 답사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문화재 훼손의 가능성은 그 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답사를 주도한 김아영 강원대 강사는 “양동마을이 감동적인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할 텐데 힘이 없다보니 답답하기만 하다”며 “구경꾼 시각을 벗어나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시민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야함을 새삼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글=박익순·사진=고영배 기자 |
2005-02-07 오전 10:19:00
 
한마디
든든한 느낌!!
(2005-02-19 오후 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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