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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안이 마련되기 하루 전이자, 4차 단식 100일째를 하루 앞두었던 2월 2일. 지율 스님이 자신을 찾아 온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에게 건넨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대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세상은 지율 스님의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지율 스님만의 독백이 아니라 온 생명의 울부짖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다. 천성산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 모두 합쳐 241일간 단식을 해 온 지율 스님은 결국 천성산과 함께 새 생명을 얻게 됐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려놓으며 버틴 시간들. 도대체 무엇이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일까. 지율 스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려고 했던 것일까.
지율 스님은 단식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바위를 깎는 포크레인 소리에 묻혀 작게 들리기는 했지만 또렷이 들었습니다. ‘거기 누구 없나요? 살려 주세요…’라는 소리가요. 어린 아이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 어머님 신음 같기도 한 소리였지요.”
천 가지 연꽃이 핀 것 같이 아름답다는 천성산. 98년 천성산 내원사로 들어가 참선수행을 하던 지율 스님은 2000년부터 산을 지키는 ‘산감’ 소임을 맡았다. 그 뒤 천성산을 오르내린 것만도 400여 차례. 누구보다도 천성산을 잘 아는 지율 스님으로서는 망설일 것 없는 선택이었다. 지율 스님의 ‘생명평화’ 실천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고통스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단식 도중 밤늦은 시간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남들처럼 살면 안되겠느냐”며 흐느끼는 목소리에 눈물이 핑돌았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단식도, 주위의 냉담한 반응도 아닌 혈육의 정이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 그만 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천성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율 스님의 단식을 환경문제로만 생각한다. 지율 스님 하면 천성산이라는 등식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어디 그것뿐일까.
지율 스님은 외로웠다.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극히 적었다. 어떤 이들은 단식이라는 극단적 행동에 대해 반론도 제기했다. 거기에다 국가라는 권력과 개발요구라는 거대하고 엄청난 현실은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지율 스님은 타협하지 않았다. 천성산의 뭇 생명을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 그것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수행자의 다짐이었다. 지율 스님은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권력과 힘의 논리에 때로는 빠져들고, 때로는 모른척하는 일부 환경단체들에게는 가슴 속 짐으로 지고 갈 멍에를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부고속철 천성산 관통을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렸었다. 이후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을 재조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마저도 일방적으로 파기했었다.
그런 정부를 보면서 지율 스님은 천성산을 지키겠다는 천성산과의 약속이자 자신과의 약속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수행자는 정직해야 된다고, 그것이 진정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지율 스님의 단식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되묻는다. 환경의 소중함, 인간의 순수성, 정직함. 이런 것들을 한 데 묶으면 결국 ‘우리네 삶’이다.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지율 스님은 말없이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지율 스님은 지금도 “나를 보지 말고 내가 추구하는 것을 보라”고 한다. 그것은 ‘나’를 떠나 ‘모두’를 보라는 애끓는 절규다. 지율 스님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