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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궁성 밖에 나갔다가 처음 마주하게 된 ‘생·노·병·사’라는 너무나도 빤한 생물학적 현상의 ‘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일체 중생이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너무도 절박한 존재의 ‘고통’ 앞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생·노·병·사’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해 갖은 노력과 고행 끝에 그 해답을 얻어 깨달음에 이르렀다. 존재하는 일체 중생의 본성은 ‘고’임을 깨닫고 그 원인을 이해하여 ‘고’라는 끝없는 존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집·멸·도’라는 사성제이다. 사성제는 의학의 진단과 치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간단하고도 명백한 이치인 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적부터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은 ‘대의왕(大醫王)’이란 칭호로 불려왔고, 그의 가르침은 고통 받는 일체 중생들을 능히 구하고도 남을 최상의 비방을 제시한 것으로 믿어졌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고 교화하는 승·속의 불자들은 그래서 일찍부터 병자를 수발하는 자로 비유됐다. 불교도들은 브라만교를 배경으로 한 카스트제도의 지나치게 청결을 강요하는 관습에 결코 얽매이지 않았다. 때문에 불교도들은 환자나 병원물질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고 감염 위험도 높아져 의학을 가까이서 자주 이용하게 됐다. 초기 교단에서는 승려들끼리만 사원 내에서 의술을 행할 권한이 주어지고, 속인들을 상대로 한 의술활동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의 구제라는 승려들의 일차 목표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속인들로부터 받은 보시의 자선적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고 봉사에 대한 대가로의 의미 전락을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입장은 대승불교 전통이 발전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대승불교에서는 승·속 모두에 보살도를 행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의술활동은 보살행을 위한 자비심을 키울 기회가 되고 효과적인 수행의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학이 (불)교학, 문법(학), 인식론 그리고 예술과 나란히 승단의 교육과정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지키는 원력과 가피력을 지닌 새로운 명호의 부처님들이 불교에 등장하게 됐다.
약사불은 그중의 한 분으로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그리고 마침내는 티베트에서까지 열렬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불교가 지닌 의료적 면모와 치료자로 명성을 드날린 승의(僧醫)들의 활약에 힘입어 불교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의학의 가르침을 약사불이 설하신 것으로 믿는 곳은 티베트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