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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깨달으시고 45년 동안 맨발로 인도를 7바퀴 도신 것은 오직 미혹한 중생을 깨우쳐 부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시면서 저희에게 경안(經眼)과 법이(法耳)가 열리도록 가르친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불퇴전의 신심으로 대승정신을 일으켜 불종이 끊어지지 않도록 종단의 동량이 될 것을 발원 합니다.” 전강제자를 대표해 수정 스님이 고불문을 낭독했다. 비구니 강사 수정 지명 보련 경진 행오 도일 법송 스님이 동학사 강주 일초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잇는 순간이었다.
계룡산 동학사(주지 요명) 경내가 하얀 눈으로 장엄 된 1월 26일 비구니 강사 7명이 새롭게 탄생했다. 밤새 내린 계룡산 상봉의 은빛 설화가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었다. 이날 전강식을 축하하기 위해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을 비롯한 종단 중진 비구ㆍ비구니 스님들과 지역 인사 등 300여명 대중들이 동학사 강설전 안팎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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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맨 앞에 한 줄로 늘어선 7명 전강제자들의 긴장된 얼굴과 꼭 다문 입술이 전강식의 엄숙함을 더했다. 목탁소리에 맞춰 스승을 향해 1배, 2배, 3배가 계속됐다. 이어 젊은 강사 7명이 뜻을 모아 번역한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을 일초스님 앞에 봉정했다. 책을 받아든 일초 스님은 전강게(傳講偈)와 법호, 가사 장삼이 담긴 신물(信物ㆍ전강을 증명하는 물건) 한 벌을 제자 한명, 한명에게 전했다.
교학의 사자상승(師資相丞)이라할 수 있는 강맥은 한국불교 교학의 발전과 전개과정을 이해하는데 척도가 된다. 스승으로부터 강을 할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의 전통적 전강식은 새로 강사가 되는 제자가 대중에게 3배하고, 스승으로부터 법호를 내려받으면 강사는 즉석에서 개당설법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강맥을 공인을 받았다. 이러한 풍습은 최근에 와서 전강게송을 전하는 형태로 정형화 됐다. 하지만 해방 이전까지 강맥의 전수는 비구에게나 가능한 것으로 인식돼, 비구니에게 강맥을 전하는 일은 함부로 드러내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58년 선암사 조실이던 성능 스님이 깔고 앉은 좌복을 대중 앞에서 전강제자 명성 스님에게 밀어주는 것으로 전강식을 대신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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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강원의 전강식은 금강산 건봉사에서 강석을 열다 한국전쟁으로 이남한 경봉 스님이 1956년 한국최초의 비구니 강원을 개설해 그해 비구니 묘엄 혜성 스님에게 강맥을 전한 것이 시초다. 이후 77년 4월에 호경 스님이 현주 일법 일초 보관스님에게 두 번째로 강맥을 전한 이래로 무려 30년 만에 열린 전강식이다. 이번 동학사 전강식은 비구니 전강식으로는 보기 드물게 전통전강의식의 절차를 그대로 따랐다. 지난해 운문사와 봉녕사 전강식이 별다른 의식 없이 담백하게 치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이번 전강식에 대한 동학사 사중의 의지가 각별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온누리에 가득하신 광명의 부처님. <화엄경> 이세간품의 ‘십종 의지처’에서 ‘보살 마하살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을 의지하여 신심이 청정하며, 일체여래를 의지하여 자부와 같이 교회(敎誨)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대 원력으로서 여래의 무상 대지혜의 의지처가 되기를’ 발원함과 같이 저희들도 오늘 이 전강(傳講)의 인연 공덕으로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행원으로 모든 선근을 모으고 방편과 원력의 행이 구족하여 여래의 공덕바다에 나아가기 원하오니 자비방편 드리우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서가모니불“ 법송 스님이 전강제자를 대표해 발원문을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이에 앞서 이날 전강을 증명한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지난 150년 동안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온 동학사 젊은 비구니 강사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이치와 안목을 갖춘 수행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며 법어를 내렸다.
전강 스승인 일초 스님도 “후인에게 부처님의 경을 전하는 길에 어렵고 힘들 일에 부딪히더라도 책에만 매달리지 말고 책을 덮고 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부처님의 일통교의(一統敎義)를 이 길이 아니면 이어나갈 수 없다는 각오로 강사의 길을 걸어 나가기를 당부”하는 전강게를 내렸다. 이밖에 본사인 마곡사 주지 진각 스님, 전국강원교직자회의장 우진 스님, 동문회장 상덕 스님, 심대평 충남도지사, 운문사 주주 흥륜 스님 등 각계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전강제자들의 약력도 소개됐다. 맏형격인 수정(성지ㆍ이하 법호) 스님은 77년 제철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동학사 강원을 졸업했다. 동국대에서 원효의 ‘이장의(二障義)’를 연구해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2년부터 동학사에서 스승인 일초 스님을 도와 학인들에게 ‘기신론’을 지도하고 있다. 명선(성희) 스님은 82년 오준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동학사 강원을 졸업하고, 2001년에 일본 대곡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불교의 해외포교와 유마경의 공사상을 주로 연구해왔다. 보련(성법) 스님은 82년 정륜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86년 역시 동학사 강원을 졸업했다. 일본불교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학인들에게 일본어를 지도하고 있다. 경진(성관) 스님은 84년 대희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동학사 강원과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 동국대 교수 해주스님 문하에서 화엄학을 연구하고 있다. 행오(성덕) 스님은 84년 쾌성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뒤 동학사 강원과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동학사 학감으로 은사인 일초 스님과 후배 학인 지도에 매진하고 있다. 도일(성인) 스님은 85년 일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동학사 강원과 중국 운남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마지막 법송(성혜) 스님은 84년 지환 스님을 은사로 득도, 동학사 강원과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나왔다.
전강식을 마친 정수 스님은 “불법을 온전히 전해야 하는 강사의 사명감에 어깨가 무거워 진다. 호경 스님 때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식과 기신론 연구를 보다 독창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학인지도에 전념하겠다”며 전강 소감을 밝혔다. 또 이미 강사 경력이 짧지 않은 행오 스님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각오로 강주 스님을 받들어 동학사를 비구니 교육의 요람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날 동학사는 전강식에 이어 제42회 강원 졸업식을 열고 4년간 엄격한 강원 교육을 통해 출가 수행자로서 위의를 갖추고 정식 스님으로 거듭나려 하는 42명 사미니들을 축하했다.
취재=조용수 기자ㆍ사진 박재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