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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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는 어엿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아름다운삶사람]작은 손길 대표 김광하 이사장


사명당의 집 김광하 대표와 자원봉사자 김미경 김국홍 곽진선씨.(왼쪽부터) 사진=박재완


“발이 너무 지저분하고 냄새도 나는데….”
“아휴, 괜찮아요. 이리 들어오셔서 씻고 몸 좀 녹이세요.”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1월 31일. 서울 신설동에 위치한 노숙자 이용시설 ‘사명당의 집’ 문 앞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근처 지하도에서 밤을 새고 추위를 피해 이곳을 찾은 노숙자들이 깨끗한 실내를 보고 잠시 주춤거린다.

김 대표의 거듭되는 권유에 이들은 신발을 벗어들고 후다닥 세면실로 뛰어간다.

“저렇게 소박하고 순수한 분들이에요. 일부 잘못된 정보나 언론 보도로 ‘노숙자=부랑자’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지만 노숙자들은 어엿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자 이웃입니다.”

여운(如雲) 김광하(53). 무역회사
사단법인 작은손길의 김광하 대표. 지난해 말 서울 신설동에 노숙자 이용시설 사명당의 집을 개원하고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사장이자 사단법인 작은손길의 대표인 그를 사람들은 불교 NGO 활동가로, 또 누군가는 그저 불교 NGO를 돕는 ‘돈 많은 후원자’ 정도로 알고 있기도 하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경불련(경제정의실천시민불교연합) 운영위원과 외국인노동자 인권문화센터 상임위원, 작은손길 대표를 맡으며 불교 NGO 활동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그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

연세대 상과대에 입학한 1970년까지만 해도 그에게 불교는 많은 ‘동양철학’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유교와 불교, 기독교에 관한 책을 두루 읽고 밤새 토론하기를 즐겼던 그에게 불교는 조금씩 ‘특별한’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71년 여름 대구 동화사에서 경봉 스님의 ‘불이(不二)’ 법문을 듣고는 대학 내에 불교학생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민중불교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도 하고 고은, 황석영, 전재성씨 등과 함께 개운사에서 모임을 갖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76년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너는 불교를 잘 아니 마음속에 번뇌가 없겠다”는 선배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동안 자신이 ‘머리’로만 불교를 이해해왔다는 반성이 들었던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당장 그만두고 부산 보림선원으로 향했다.

1년 6개월간 수행에만 정진했다. 부모님의 성화와 ‘어느 정도 공부가 됐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서울로 올라와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87년에는 도이상사라는 작은 무역회사를 설립해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고 경제적인 기반도 잡혀갔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의문과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생사를 걸고 수행에 매진했고 스스로 ‘공부가 좀 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사업을 한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는 소홀했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났다.

“도대체 수행을 했다는 사람의 생활이 왜 이런 것일까?” 수행과 삶의 괴리에서 오는 공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무렵 불교와의 인연을 다시 맺어주는 계기가 생겼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로터리 클럽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보호활동을 펼치는 김해성 목사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김 목사는 심한 매질과 노동력 착취, 산업재해,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생생하게 전해줬다.

“저는 20여년 동안 무역업을 하며 외국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그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는 불교계 시설을 찾아 나선 그는 경불련 외국인노동자 인권문화센터를 알게 됐다. 그때가 97년이었다. 처음엔 금전적인 후원으로 시작된 그의 봉사는 현장 활동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봉사’만을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머리’로 알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편이 ‘봉사’였다며, 그는 봉사를 ‘수행’으로 이끌어 보자는 다짐을 했다.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 정작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수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생활과 떨어진 수행은 트레이닝(수련)에 불과할 뿐입니다.”

외국인노동자 인권보호와 탈북자 지원 등으로 봉사활동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김 대표가 최근 수행의 장으로 삼고 있는 곳은 ‘사명당의 집’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사명당의 집’은 노숙자들이 찾아와 몸과 옷을 씻고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드롭인(Drop In) 센터. 문을 연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루 40여 명의 노숙자들이 찾는다.

시설이 문을 여는 날이면 봉사자 김영진(39)씨는 아침부터 건물 앞 큰길을 깨끗이 쓸어 놓는다. ‘노숙자들이 드나드는 지저분한 곳’이란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올해 73세인 봉사자 김국홍씨와 김 대표는 노숙자들의 상담과 재활지원을 맡고 있다. 아버지 같고 때로는 엄한 스승 같기도 한 이들에게 노숙자들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재활의지와 일할 여건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쪽방이라도 마련해주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가 ‘봉사자 도반’들과 함께 내건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 둘째는 노숙자들을 이용해 언론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 셋째는 가능하며 회원들의 힘으로 시설을 꾸려나가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화건설이 시설 건립을 지원하고 연세대 불교학생회가 개인사물함을 기증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경비는 회원들의 회비와 김 대표의 자비로 이루어졌다.

“회원들의 봉사와 후원만으로 운영하다보니 노숙자들에게 줄 수 있는 물질적인 도움은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다른 단체에서 큰 지원을 받다보면 회원들이 모아준 작은 성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는 말처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디더라도 착실히 나아갈 것입니다.”

현재 주3회만 운영하는 시설을 매일 개방하고 싶고, 노숙자들을 재워줄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싶은 마음이야 회원들의 공통된 심정.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운영에 무리가 따르고, 이웃을 돕겠다고 시작한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저나 회원들은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 또한 욕심이고 애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매인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진정한 봉사고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금강경 독송모임’을 이끌고 전재성 박사(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와 함께 초기경전 번역에 힘쓰는 등 끊임없이 불교를 공부하고, 그것을 생활 속의 실천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김 대표. ‘작은 손길’의 소중함을 알고 그 손길을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온전히 바꾸어 놓는 그에게서 ‘깨달음’과 ‘수행’이란 단어가 명사가 아닌 ‘동사’임을 느낄 수 있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5-01-28 오후 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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