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수덕사(주지 법정)가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 돕기를 위한 자비의 탁발 행사에서 모은 7천만원을 1월 28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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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주지 법정 스님은 “견성암 선방 스님을 비롯해 대중 스님들이 가가호호 직접 방문해 탁발을 했다”며 “탁발을 하면서 지역 인심이나 지역 내 불교계 단결력을 알 수 있는 계기도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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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음은 수덕사 재무 제현 스님이 자비의 탁발할 때 일어났던 일들과 느꼈던 점들을 다음 카페 ‘禪 이야기(http://cafe.daum.net/zenmind)’에 소개한 글이다.
수덕사에서는 인근 5개 시군에서 탁발 행사를 가졌다.
비구(比丘)란 범어의 음역으로 얻어먹고 사는 수행자를 뜻하지만 절에 들어온 지 25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탁발해본 경험이 나에게는 없었다.
조계종단에서는 많은 폐단을 야기하는 개인적인 거리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유랑 객승들이 길거리를 다니며 탁발하는 모습이 수행자의 모습으로는 보이질 않았고 나에게는 거지들이 동냥을 얻으러 다니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 삼보를 훼손하는 행위로만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남아시아 지진 해일 피해 이재민을 돕기 위한 거리 탁발 행사를 하게 되었다.
종단의 대표이자 산중의 어른이신 총무원장스님이 인사동 거리에서 탁발을 하시고 수덕사 주지스님이 앞장서서 하시는데 재무 소임을 보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추호도 없는 것이다.
1)첫 행사는 예산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각 시군의 장날에 행사 일을 맞추다 보니 하필 일년 중 가장 추운 절기인 대한(大寒) 날씨에 걸린 것이다.
수덕사 대중스님들과 말사 주지스님들, 그리고 결제 중에도 全대중이 모두 참석하신 보덕사 비구니 스님들이 신도들과 기관장들이 함께 모여 간단히 발대식 행사를 마쳤다.
4개조로 나누어 길을 나서는데 개인 상점을 들어가서 발우대를 들이밀기가 쑥스러워 행사 진행을 핑계로 길거리 행진만 하다가 돌아왔다.
과거에 탁발을 여러 번 했다는 스님은 어머니와 함께 두 아이가 과자를 먹으면서 행렬 앞으로 걸어오자 발우대를 아이들 앞에 들여대며 “니들 꽈자 사 묵고 남은 거 있으면 여기다 좀 넣그라” 하자 아이들이 “없어요” 하며 피해 버린다.
아이들한테 그러는 모습이 좀 안 좋아 보였다.
조금 걸어가자니 아이들이 천 원짜리 하나씩을 다시 들고 와서 그 스님 발우에 넣고는 엄마에게 도로 뛰어간다.
아마도 절에 다니는 엄마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돈을 주며 보시를 하게 한 것이다.
그 엄마의 마음 씀이 정말 관세음보살의 행처럼 생각되었다.
흩어졌던 스님들이 두 시간에 걸친 탁발 행사를 마치고 행사장으로 돌아온다.
발우에 수북하게 지폐를 담아 와서 모금함에 넣는 스님들의 모습이 그렇게 위대해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모금함에 한 푼도 넣을 것이 없었다.
2)두 번째 행사는 홍성군청 앞에서 하였다.
예산에서의 경험으로 거룩하게 행진만 해서는 절대 원하는 모금은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것으로 탁발 방식을 바꾸었다.
홍성군은 아는 상점도 더러 있기에 여기서는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며 속으로 다잡아 보았다.
행사장에서 발대식 뒷정리를 마치고 완전 무장(가사장삼에 털신 신고 흰 장갑에 발우 끼고 목도리 두르고)을 하고는 홍성에서 제일 번화한 명동 길을 나섰다.
늦게 출발을 하니 내가 아는 상점은 다른 스님도 늘 거래를 하는 곳인지라 벌써 수없이 다녀가셨다 한다.
오늘은 견성암 노스님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얼마나 억척이신지 다른 스님이 다녀가셨다고 해도 “그 스님들만 주면되나 나도 줘야지”하시며 천 원짜리 하나라도 꼭 받아내신다.
파출소로 탁발간 비구니 노스님 두 분이 한참이 지나도 나오시질 않아 들어가 보니 순경들은 돈 없다고 돌아서 있건만 천원이라도 내라며 막무가내로 실랑이를 하시기에 "그만 나가셔요"하며 등을 떠밀며 겨우 나왔다.
환갑 진갑도 훨씬 지나신 견성암 선원장스님과 노스님들도 저리 하시는데 나도 한번 해보자 하고는 혼자의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가 용기를 내어서 “그래 아무집이고 한번 들어가 보자” 하고는 무조건 밀고 들어간 집이 하필이면 여자 속옷이 즐비하게 널린 BYC 매장이 아닌가?
얼굴도 못 들고 삐죽이 문을 여는 순간 “오늘 스님들이 네 번이나 다녀갔어요!” 하는 짜증스럽고 날카로운 대답이 들려서 “죄송합니다” 하면서 주인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얼른 문을 닫고 나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님들이 오늘 안 다닌 집이 어딘지 알 수가 있나?
한집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한번만 더 들어가 보자하고 이번에는 선물가게 문을 밀고 들어가니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팔짱 낀 주인여자가 “우리 교회 다녀요!”하며 냉담한 모습을 보인다.
차가운 눈빛의 주인 얼굴을 보자니 머리 위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모습이 그제야 보인다.
“아 예에~”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째 골라가도 그런 집만 갈까?” 속으로 투덜대며 걷다보니 회향식 장소가 눈앞에 들어온다.
회향식 시간도 늦어가며 악착같이 발우 수북하게 탁발해 오시는 비구니 스님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위대해 보인다.
역시 오늘도 모금함에 한 푼도 넣지를 못했다.
3)세 번째 탁발은 서산시청 앞에서 거행되었다.
오늘은 방송차량에 탑승을 하고 거리 홍보 소임을 보게 되었다.
못난 나처럼 마음고생하시는 스님들이 없도록,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탁발을 할 수 있게 홍보를 해드리자 생각하고 석가모니불 정근과 함께 목이 아프도록 거리 홍보에 최선을 다했다.
“오늘 서산지역에서는 지진 해일로 가족과 집을 잃고 폐허 속에서 고통 받는 남아시아 국민들을 돕기 위한 자비의 탁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과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식량이 되어서 희망을 잃은 이재민에게 전달됩니다.
뜻 깊은 자비 모금행사에 빠짐없이 동참합시다.
시민 여러분.........석가모니불.......”
체질에 맞지 않는 탁발보다는 누군가 해야 하는 거리 홍보 캠페인이 좋은 듯 하면서도 마음한구석은 왠지 편하지가 않다.
스님들이 고생하시는 것에 비해서는 방송 캠페인은 너무 편한 것이다.
회향식을 마치도록 견성암 비구니스님 한분이 돌아오지를 않는다.
뒤늦게 비구니 스님이 환희심이 가득 찬 얼굴로 수표 한 장을 한 손에 흔들며 개선장군처럼 걸어오신다.
하도 탁발이 안돼서 빌딩 3층에 있는 한의원까지 올라가 봤더니 원장님이 흔쾌히 수표를 주셨다고 정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기다리던 스님들과 신도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하신다.
서산시에서는 스님들이 기대보다 탁발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고 말씀들을 하시는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탁발 행사 전 이틀 동안 사이비 승려들이 종단 전단지까지 들고 다니며 서산 시내 바닥을 모두 훑고 다닌 것이다.
스님들이 방문을 하면 어제도 그제도 이재민 돕는다고 성금을 냈는데 또 왔냐고 짜증어린 모습이다.
“보살님 그 사람들은 가짜고 우리가 진짜걸랑요.”
어깨띠를 보여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해도 이미 “때는 늦으리”다.
시대 변화에 민감한 전문유랑객승들에게 "찬사"를 바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변해야 산다!!!"
4) 넷째 날은 당진군이다.
보덕사 선방 스님들과 영랑사, 영탑사, 성당사 그리고 수덕사 대중스님이 주축이 되었고 많은 신도들이 동참하였다.
평상시에는 수줍어서 남들과 말도 안하는 나이어린 비구니 스님들마저 무슨 마음이기에 저리 적극적으로 탁발을 하는지 바라보고 있자면 가슴 뭉클한 무엇이 느껴진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돌아오시는 노장스님들이 안쓰러워 “추운데 고생 많으셨죠?” 인사를 드리면 “그 사람들 가족 다 잃고 더운 나라에서 추위에 떨고 굶는 것 생각하면 이건 고생도 아니죠, 이렇게 해서라도 도울 수 있다면 우리가 고맙죠~”
정말 모든 스님들의 눈에서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공통된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힘과 사랑과도 같은 “자비의 서광(瑞光)”이었다.
매번 육칠십 여명 가까운 스님들이 추운 날씨에 강행군을 하여도 누구도 이 자비의 탁발 행사에 불평을 하시는 분이 없었다.
한번 참석하신 스님들은 거의 마지막 행사 일까지 동참을 하고 싶어 하셨다.
갈수록 말사주지 스님들의 동참의식도 높아졌고 신도들의 수도 많아졌다.
“자비의 에너지 장(場)”이란 공감대가 흐르기 시작한 모든 대중스님들은 일사불란하게 당진군 장터를 누비며 정말 열심히 탁발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당진에서 거리홍보를 맡았지만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뭔가를 가라앉히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권선 캠페인을 하였다.
열심히 탁발하시는 스님들이 정말 고맙고, 한국 불교의 저 묵직한 저력과 희망을 느끼게 하였다.
행사를 마치면 모금함을 갖고 수덕사로 돌아와 해당 지역 사암연합회 대표가 모인 가운데 개봉을 하고 주무부서인 사회국장 주도로 함께 정리를 하였다.
그동안 모금한 가운데 거리 탁발로서는 최고 많은 액수를 모금하였다.
소식을 들은 대중스님들마다 모두 와~ 소리와 함께 박수를 치시며 기뻐하였다.
5) 마지막 탁발 행사는 태안군에서 시작하였다.
봉고차 한대에 견성암 스님들이 나눠 타고 안면도 탁발을 떠났고 태안은 오후 2시부터 마지막 탁발 행사에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참석을 안 하면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았다.
방송은 포교국장이 맡았고 나도 결연히(?) 발우 하나를 골라 들었다.
영탑사 주지스님의 발우를 보니 출발 전부터 만 원짜리가 여러 장 보이기에 하나만 달라 하여 하나 얻고, 아는 신도를 만나 만원만 달라 하여 또 넣었다.
태안 신도들이 자신들의 주지스님에게 드린다고 준비한 봉투도 “우리스님이 따로 있냐”고 무조건 나 좀 달라하여 내 발우에 담았다.
내 지갑에서도 돈을 꺼내 내 발우에도 담고 다른 스님들 몇 분에게도 나눠드렸다.
출발 전에 제법 자본금을 갖추니 조금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거리에 나서서 첫 집에서 오천 원을 얻으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그 이후는 망설이지 않고 닥치는 대로 들어갔다.
다른 스님들이 저기는 가 봐도 소용없어 보여 하면 일부러 더 들어가 천원이라도 얻어 나왔고
이층 삼층도 오르락 거리며 탁발을 했다.
오늘 이순간만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탁발의 시간인 듯이…….
순조롭게 되는 듯싶더니 교회 다닌다고 절대 못준다고 사람도 있고 쳐다도 안보고 손을 내젖는 사람들도 많다.
유달리 복덕방 영감님들이 손을 내젖는데 곳곳에 걸린 "행정수도 이전 강행하라" " 충청도민이여 단결하자"는 현수막을 보고서야 그분들의 손짓이 의미하는 바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성당에서 냈다는 분도 있지만 똑같이 좋은 일하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동참하라고 하면 망설이다가 뒤돌아서려면 불러서 천원이던 이천 원이던 꼭 주는 편이다.
기독교인과 천주교인들의 행동을 비교해 보면 절대 같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달라도 참 많이 다른 신을 믿는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또 재미있는 현상은 화려한 상점이나 식당보다는 허름한 슈퍼나 철공소 같은 허름한 곳일수록 만 원짜리가 잘 나오고 인심이 후하다는 것이다.
괜찮은 한정식 집이라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대개 주인이 없다거나 개시를 못했다고 잡아뗀다. (하지만 얼굴 보면 주인인지 아닌지 알 것 같다)
서광사 도신스님은 장바닥에서 노점 하는 할머니에게 보시 좀 하라고 하니 오늘 장사가 안돼서 못한다는 것을 짓궂게도 “제가 나중에 와서 팔아 드릴 것이니 오늘은 조금이라도 보시를 해주시지요”하며 애청을 하였단다.
그 할머니가 정말 꺼내기 어려운 보물을 꺼내듯이 몸빼 깊숙한 곳에서 돈을 꺼내시는데 손을 달달 떨면서 눈물겹게 이천 원을 주시는데 정말 받기가 죄송스러웠다고 한다.
나중에 꼭 찾아가서 팔아드린다는 약속을 지켜 주셨으면 좋겠다.(만날 때마다 물어볼 작정임)
관공서는 대체로 단체로 모두 걷어서 냈다고 안내려는 추세로 일관한다.
농협 한곳을 들려 제일 높은 상급자에게 “좋은 일에 복 좀 지시지요”하니 동전을 천 원 정도 주려고 세고 있다가 부하 직원이 저쪽에서 와서 만 원짜리를 넣으니 체면에 동전을 집었다가 내려놓고 본인도 지폐를 할 수 없이 놓기도 한다.
이런 일이 아니고 그냥 혼자 동냥을 한다면 천원 벌기가 참 눈물겨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일을 겪어보니 절에 신도들이 와서 불전이나 기도금을 내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정성으로 내는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부지런히 다닌 결과 얼마인지는 세어 보지 못했지만 나도 남들처럼 발우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태안군에서 5개 시군 가운데 제일 많은 거리 탁발금이 걷혔다.
결과를 들은 스님들마다 월드컵 한일축구에서 이긴 것보다도 더 좋은 듯 거의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 같으면 굶어 죽어도 못할 것 같지만 모든 스님들이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고 절박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동체대비를 실천하는 일이기에 신념을 가지고 가슴에 자비의 불을 밝히고 뛰어다닌 탁발 행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힘은 들었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행사를 마쳤다.
어째서 6바라밀 중에서도 보시바라밀이 제일바라밀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소신 있는 행동을 솔선수범해주신 종단 어른 스님과 지독한 감기 속에서도 빠짐없이 앞장서주신 수덕사 주지스님, 동안거 결제 중에도 자비 실천 수행에 적극 동참해주신 견성암과 보덕사 선방스님들, 많은 신도들을 이끌고 빠짐없이 동참해주신 말사 주지스님들과 적극적으로 모든 일정 동참해주신 수덕사 대중스님들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 스님들과 불자님들에게 박수 좀 쳐주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고생하신 사부대중의 정성으로 남아시아에서 고통 받는 이재민이 한분이라도 더 이고득락하시기를, 먼저 가신 분들은 고통 없는 세상에 태어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
수덕사에서 제현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