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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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식 축원문을 조상님께 읽어드려요




설날 온 가족이 차례 상 앞에 모여 절할 때, 제주(祭主)가 축문을 읽는 동안 앞에 엎드린 가족의 발뒤꿈치를 훔쳐보며 킥킥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축문의 내용이 제사 지내는 이들의 마음속에 와 닿지 않고 어려운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온 일가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간절한 마음으로 축문을 읽으며 돌아가신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는 것은 새해를 진정 뜻 깊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갈수록 형식적으로 축문만 읽고 부랴부랴 끝내기 일쑤인데다 더욱이 요즘 아이들에겐 한문 일색의 축문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 공염불처럼 들리기만 한다.

불자가정이라면 불교적인 의미를 담아 축문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불교의식의 이해와 바람직한 집전방법>을 펴낸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의 영석 스님(포교연구실 사무국장)은 “불교식 제사는 영혼을 위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가로 하여금 반야의 지혜를 깨달아 극락왕생할 수 있게끔 하는데 의미를 둔다”며 “온 가족이 빠짐없이 동참하여 불교축문을 쓰면 화합과 효도의 근본을 배우는 동시에 깨달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막연하고 어려운 한문으로 축문을 쓰는 대신, 한글로 쓴다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성무 스님(수원 용주사 교무국장)은 말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행하는 모든 불공·시식 등의 의례문은 불경의 핵심사상과 역대 선조사 스님의 경책 말씀, 진언 등으로 구성돼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향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거의 한문으로 돼 있어 의미 전달이 쉽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똑같은 내용도 입만 벙긋하며 외울게 아니라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그 의미를 확연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런 점에서 축문 내용은 사찰에서 조석으로 읽는 한글로 된 <반야심경>이나 <아미타경>, <금강경> 등의 경전과 선어록에 적혀 있는 선사들의 말씀을 참고하여 만드는 게 좋다고 성무 스님은 조언한다.

또 내용에는 단순히 조상님께 차린 음식을 권고하는 유교적인 축문이 아니라 해탈에 대한 구체적 서원을 세우는 등의 불교적인 의미가 담기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영석 스님은 “축원이 자기 가족만을 위한 게 아니라 시방 삼세 부처님과 일체 모든 중생들이 결국에는 모두 해탈하도록 서원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축문을 쓸 때도 ‘조상을 기리고 그 음덕이 우리 가족에게 미쳐서 잘되기’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부처님 법을 만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연 지어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 봉녕사 신혜스님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한다. “다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영가가 ‘좋은 인연 맺으시고 불법 안에서 모두 해탈을 얻으시길’ 기도하는 것이 바로 차례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는 법이지요.”

신혜 스님에 따르면 “삼보에 먼저 귀의한 후 영가를 부른후 공양을 올리고 나서 축문을 읽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한다. 축문을 읽을 때는 대중이 다 함께 독경식으로 낭송하며, 만일 대중이 함께 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제주가 혼자 낭송하고 대중이 경청하여도 무방하지만 가급적이면 대중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스님은 설명한다.

이번 설에는 이와 같은 내용을 참고해 한글로 된 불교식 축문으로 차례를 지내보자. 한국 장례문화연구회에서 알려주는 불교식 축원문과 발원문을 소개한다.


축원문
저희들 우러러 일심 기울여서 대원적 ○○○을 생각하올 때 천품이 어질고 밝으시옵고 성인의 크신 뜻을 받드셨어라. 덕성은 온 이웃에 널리 떨쳤고 정행은 불보살을 본받으시니 온천지가 받드는 덕본이시라.
세간의 인연이 다하시오매 무상의 소리 없이 찾아들으니 번뇌몸 집착 없이 시원히 벗고 극락국 구품연대 이르소서.
저희들 후손들은 눈물 삼키며 크신 은덕 새기며 감격하여서 자용을 우러러 망극합니다.
저희들이 불보살님 크신 성호를 일심정성 기울여서 봉송하오며 미성다한 진수다과 올리옵나니 해탈식 법식으로 거둬 주시사 대보리 연화좌에 좌재하소서.(반배)



발원문(할아버지 할머니 평안하소서)
삼가 조상의 영전에 향사르며 우리 후손들 모두가 배례하나니 할아버지 할머니 평안하소서.
저희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리며 이렇게 발원합니다.
당신들이 생전에 남기신 뜻은 크고 훌륭하며 자손들은 대대로 받아 지녀 사회와 겨레를 위해 그 뜻을 펴고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 부디 기뻐하소서. 그리고 후손들을 기특히 여기소서.
아득한 예부터 닦아온 이 땅에는 수많은 선조들의 지혜가 숨 쉬고 오늘은 저희들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배달민족들의 핏줄은 반드시 이어져야 하고 그 기세를 만방에 떨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이고 소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로는 부처님 말씀을 받아 겨레에게 전하고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인욕과 정진의 길을 닦고 있으니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위대하십니다. 세존의 말씀이시여.
당신들의 크나큰 뜻 깊이 받들어 오늘 이처럼 배례하오니 섭수하소서 세존이시여,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평안하소서.
우리 함께 자리하여 공양 올리나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참고: <통일법요집>(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 <가정에서의 불교식 제사>(한국 불교장례문화연구회), <불교의식의 이해와 바람직한 방법>(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사단)
이은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5-02-15 오전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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