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17. 고려시대 ⑤
차의 국내 생산량을 늘리고 송나라에 사신이 오가며 차가 들어왔지만 그래도 부족하여 상인들에 의해 많은 양이 수입됐다. 그러나 왕실과 사찰, 일반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차의 양은 자꾸 늘어 자연 다농(茶農)들에게 생산을 무리하게 독려했다. 도자기나 동(銅), 차 등을 생산하던 농민과 장인들이 산지에서 도주하는 일도 생겼다. 이때는 국가의 모든 제의는 물론 기우제에까지 차가 쓰였다. 뿐만 아니라 신하들과 사찰에 내리는 차의 양도 많았고 왕이 직접 사찰에 행행하여 재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은 <대관다론>의 저자 휘종이 등극하면서 차 전매제를 다시 실시하고 차의 고급화를 촉진하게 된다. 선가(禪家)에서는 ‘선원청규’를 관례화하고 <몽계필담> <북원공다록> 등의 다서도 계속 나와 연고차의 절정기를 맞았다. 일본은 전대와 같이 사찰이나 왕실에서 차를 마신 기록이 간혹 보이고 투다(鬪茶)의 풍습도 일부 있었다.
① 의천이 미복(微腹)으로 송나라에 가서 원소종본, 불인요원 등의 고승을 만나 천태종의 경륜을 터득하고 불교경전 1천여 권을 가져왔다. 그 후 4700여 권의 경전을 수집 간행했다.
② 통도사 사적록에 절터의 사방둘레 12곳에 장생표를 세웠다. 동을산쪽에 있는 다촌(茶村)은 차를 만들어 절에 바치던 곳이다.
③ 이정공이 선지(宣旨)를 받들어 흥왕비를 세우는데 비단, 은그릇, 다포, 말안장 등을 내렸다.
④ 왕(숙종)이 왕비와 원자 등을 거느리고 삼각산 승가굴(상장사)에서 재를 올리며 차를 내렸다.
⑤ 최사추에게 예종이 차와 용봉차를 내리니 사추가 은혜에 감사하는 시를 올렸다. 곽여도 예종으로부터 쌍각용차를 하사받고 시를 지었다.
⑥ 이 책은 고승(高承)이 찬한 것으로 납차, 용차(龍茶), 소단(小團), 석유(石乳), 각다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⑦ 휘종황제 조길은 예술에 조예가 깊고 차를 좋아해 송나라 연고차의 모든 것을 기록한 <대관다론>을 저술했다.
⑧ <동재기사>는 범진(范鎭)이 찬한 책으로 이 시대의 다세와 몽정차에 관한 기록이 있다.
⑨ 국가에서 관장하려는 의도에서 시행.
⑩ 심괄: 송대인으로 박학다문하여 많은 책을 저술했다. 그 중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당시의 다세와 교역이 적혀있다.
웅번: 송대 다학자로 <선화북원공다록(宣和北苑貢茶錄)>에서 건천차(建川茶)에 관한 것을 자세히 기록했다.
⑪ 진사도: 송대 시인으로 차를 좋아해서 ‘다경서(茶經序)’를 남겼다.
⑫ <대관다론>은 송차(연고차)에 관해 20개 항목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기술한 책이다.
⑬ 채경은 송대인으로 취종 때 재상을 지냈다. 황제가 직접 점다한 차를 함께 마신 기록이 그의 <설부삼종>에 전한다.
<한국>
고려
1082 만복사 건립
1085 금강도량 7일 동안 열다
의천의 입송(入宋) ①
@ 통도사의 장생표 ②
1090 송나라 상인 150명이 토산품을 바침
1095 전쟁 승리로 다약(茶藥) 하사
1097 흥왕사에 다기, 다포 하사 ③
1099 왕이 상장사에서 재를 올리다 ④
1102 해동통보 발행, 우란분재를 행함
1104 왕이 옷과 다향을 보내 기우제를 지내다
1107 신하들에게 다약과 은합을 내림
1108 동소(銅所) 자기소 등 별공물을 과다하게 징수해 장인들 도주
@ 최사추와 곽여에게 차를 내리다 ⑤
<중국>
송대
1080 각다법ㆍ다마법 개정, 사물기원(事物記原) ⑥
1082 휘종의 등극 ⑦
1085 <동재기사(東齋記事)> ⑧
차전매제 다시 실시 ⑨
@ 심괄(沈括), 웅번(熊蕃)의 활동 ⑩
1102 진사도의 죽음 ⑪
1103 선원청규 간행
@ <대관다론> ⑫
@ 채경(蔡京)의 활동 ⑬
<일본>
헤이안 시대
1083 원의가(源義家)의 3년전쟁
@ 투다 풍습
1102 백하상왕(白河上王)의 축연에 다례를 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