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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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사랑 없으면 혁명도 없다오"



체 게바라.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출판계에 불어닥친 열풍중 하나는 체 게바라(1928~1967) 관련 서적 의 출간 러시였다. 현재 국내에 번역된 체 게바라 관련 책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특히 장 코르미에 프랑스 파리지앵잡지 기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은 이미 오래전에 출간됐지만 현재까지도 시내 유명 서적의 베스트 판매 순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 얼마전에는 체 게바라가 젊은 시절 남미 대륙을 종단하면서 현실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국내에 개봉돼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의 젊은 혁명가인 체 게바라에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이 주목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새로 출간된 <체 게바라 자서전>을 꼼꼼히 읽다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가 풀린다. 체 게바라. 검은 베레모에 손질하지 않은 긴 머리칼, 텁수룩한 턱수염, 정열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 아르헨티나의 촉망받는 의사출신으로 인간을 옭아매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세계 전쟁터를 뛰어다닌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 체 게바라.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칭송했던 체 게바라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체 게바라가 직접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 어느 때라도 자기 분신처럼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며 광적일 정도로 모든 것을 기록했다. 이 책은 바로 그가 직접 쓴 여행기, 일기, 에세이, 연설, 문학비평, 논문, 독후감 메모 같은 글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 인터뷰 기사, 직접 찍은 사진 등 그가 남긴 수많은 육필 기록들을 연대기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그래서 불꽃같은 혁명가로서의 모습뿐 아니라 시집을 끼고 다닌 로맨티스트이자 따뜻한 휴머니스트로서 체 게바라의 매력 넘치는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바로 체 게바라의 이런 인간적이고 소박한 모습때문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있다.


1959년 아르헨티나의 <라디오 리바다비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체 게바라(사진 맨 오른쪽).


그의 진솔한 매력은 언젠가 그가 기자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자네가 쓴 기사를 읽었네. 나를 좋게 묘사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그렇지만 너무 좋게 묘사했군.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혁명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손가락에 꼭 맞는 장갑을 끼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고수해야 한다는 점이네. 기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자네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 모든 부분을 빼게. 그리고 사실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것에는 각별히 주의하길 바라네” 라고 자신을 위해 좋게 기사를 쓴 친구에게 충고의 편지를 보냈다.

혁명동지들로부터 '체(기쁨 슬픔 놀람 등을 나타내는 감탄사로 '나의'라는 뜻을 지닌 인디언 토속어)로 불린 게바라는 58년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59년 1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 쿠바 혁명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한 그는 남미 각국을 돌며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그 뒤 쿠바에서 2인자 자리를 미련없이 버린 그는 65년 내전중이던 콩고로 날아갔고 이듬해엔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혁명을 위한 게릴라전을 감행한다. 그러나 대오를 이탈한 부하의 배신으로 그는 사선(死線)에 내몰린다. 그 최후의 결전에서 17명의 대원들과 함께 미국이 지원하는 327명의 레인저부대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운명의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적의 총알이 장딴지를 꿰뚫는 처절한 교전 끝에 게바라는 결국 체포됐다. 그의 유언은 짤막했다. “카스트로에게 전해주오. 이 실패가 혁명의 종말은 아니라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없이는 혁명도 없다오”


체 게바라는?
-1928년
체 게바라 자서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며 시인을 꿈꾸다가 여러 차례 남미대륙을 여행하면서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51년 23살의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조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안데스 산맥을 가로지르고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횡단한 후 아마존으로 뛰어 들겠다는 계획으로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8개월간의 긴 여행길에 오른다.
-1954년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했다가 탈출한 체 게바라는 멕시코로 망명한 후 1955년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반군사령관으로서 게릴라 투쟁을 이끈다.
-1959년부터 쿠바 혁명정부의 2인자로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 등을 역임한다. 한편,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를 조심스럽게 예견하기도 했다.
-1965년 4월 어느날, ‘나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이다. 쿠바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1967년 10월 8일 부상을 입은 체 게바라는 미국이 지휘하는 볼리비아 반군추격대에 생포되어 다음 날 ‘지금의 실패는 결코 혁명의 종말이 아니다’라는 유언을 남긴 채 총살되었고, 시신은 은닉되었다. 그의 나이 39살 때였다. 그의 유해는 30년이 지난 1997년 발견돼 쿠바로 돌아왔다.


■ 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박지민 옮김
황맨 펴냄/1만3천원
김주일 기자 |
2005-01-25 오전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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