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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청댐이 만들어지면서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양손을 모아 직접 물을 떠 마시던 추억을 댐에게 빼앗겼다. 물 속에 있는 고향이 그리워 배를 타고 주변을 맴돌다 어지럽게 떠다니는 쓰레기를 보니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아 견딜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그래 고향을 다시 찾자. 모깃불 지피며 평상에 앉아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던 그 시절 고향집 앞마당은 다시 볼 순 없어도 냄새나는 오물로 고향이 더렵혀지는 것만은 막아야지.”
이렇게 결심하며 20여 년 동안 대청호의 쓰레기를 치워 온 대청호 파수꾼 김기동씨(53).
하루 종일 쓰레기와 씨름하다 보니 온 몸은 악취와 얼룩으로 뒤범벅이 되고 발바닥과 손은 유리에 찔리고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 홍수에 휩쓸려 내려온 돼지며 닭들의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준적도 많았다.
“쓰레기나 치우는 아빠가 정말 창피해요. 친구들이 네 아빠 청소부지?라며 놀린단 말예요.”, “여보. 이제 돈 안 되는 일은 그만하고 우리도 도시로 나가 살아요.”
이렇게 자식과 아내의 원망과 성화를 쓰레기 더미와 함께 묻은 것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겼다.
이제는 평생의 업(業)으로 생각한다는 김씨. “돈을 생각하면 절대 못하죠.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하루 세끼 더운밥은 먹으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들 둘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그것도 고맙고요. 이제는 두 아들 녀석과 아내가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니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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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대청호에서 건져내는 쓰레기는 1년에 1천 가마. 4톤 트럭으로 250대 분량이 넘는다. 이런 그의 선행이 입 소문을 타고 대청댐 관리사무소에 전해져 1989년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그를 ‘대청호 수질감시원’으로 공식 위촉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생업까지 팽개치고 매일 쓰레기와 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누구라도 쉽게 나서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대청호에 쌓이는 쓰레기를 김씨 혼자서 치우기에는 너무 많다.
1984년 맨 처음 남편이 이 일을 시작할 때 부인 한명옥씨(49)는 돈도 되지 않는 일에 매달리는 남편을 극구 말렸다. 그렇게 한가하면 어디 가서 품앗이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게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 돈까지 써가며 쓰레기를 치우는 김씨를 비웃기만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런 주위의 눈총에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쓰레기 수거작업에만 몰두했다. 쓰레기를 담을 포대와 쓰레기를 긁어 모으는데 필요한 갈퀴 등 필요한 용품을 사는데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자기 집 안방에 쓰레기가 쌓여 있으면 누구라도 그것을 치우겠지요. 바로 저는 제 고향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것 뿐 입니다. 남들이 저에게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 혀를 차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어려움을 <천수경> 염송으로 이겨냈다. 주위에서 노골적으로 비웃을 때마다 그의 천수경 소리는 높아만 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들을 ‘팔부(부처님한테 팔았다는 뜻)’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는 어릴 적부터 절에서 염불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천수경>을 좋아 합니다. 아마 제가 대청호 쓰레기 줍는 일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웃을 위해 자연을 내 몸과 같이 보살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묵묵히 <천수경>을 외우며 대청호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한지 몇 년쯤 지났을까. 가족과 이웃 주민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부인과 자식들도 팔을 걷어 붙였다. 남편 혼자 배를 띄워 나가는 것이 불안하고 농약병, 비닐 등 점점 늘어나는 쓰레기를 혼자 치우는 것을 안쓰럽게 여긴 부인은 1992년부터 손을 보태기 시작해 그 역시 전국에서 첫 여성 수질감시원으로 위촉됐다.
이들 부부는 마을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김씨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9년 간 마을 이장을 지냈으며 2001, 2002년에는 부인 한씨도 이장을 맡았다. 이때 대청호에서 주운 농약병 등 재활용 쓰레기들을 되판 수익금으로 마을 노인 위안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자원재생공사에 위탁, 처리해 얻은 수익금으로 10년 전부터 조촐하나마 불우한 노인들을 돕고 있다. 또 1주일에 서 너 번씩 틈나는 대로 보은군 읍내에 위치한 성심양로원을 찾아가 자원봉사도 한다.
양로원 가족들의 빨래며 화장실 청소는 모두다 그의 몫이다. 김씨는 성심양로원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천수경 거사’로 통한다. 몸도 마음도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들에게 구성진 목소리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하며 <천수경>을 소리내 외워주면 양로원은 어느새 법당이 된 듯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경건하게 변한다.
성심양로원의 김말연(75)할머니는 “김 거사님 오기만 하루 종일 손꼽아 기다리는 구만유. 재미난 입담하며, 안마도 잘해 주고 거기다가 <천수경>을 얼마나 잘하는지 스님해도 되 것시유. 참말로 아들보다 낫당 께라”라며 연신 김씨 칭찬에 침이 마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지난 2000년 사비를 털어 낚시터 주변 다섯 곳에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또 해마다 자연보호의 날에는 폐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인근 각 면에서 활동하는 자연보호협회원들에게 조끼와 모자를 구입해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숨은 선행과 봉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김기동 씨는 지난 1992년 건설부 장관 표창과 환경부 장관 표창 등 각계 단체들이 주는 20여 개의 표창을 받았으며 2001년도에는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도 받았다.
부인 한명옥 씨 역시 1994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으며 SBS자원봉사대상 등 수많은 환경 관련 표창을 받았다.
김씨 부부에겐 소원이 하나 있다. 바로 10년 안에 부지런히 돈을 모아 20명 정도의 인원이 살 수 있는 무료실버타운을 세우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 부모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은중경>의 말씀을 되새겨 자식이 부모님께 효도한다면 그곳이 바로 불국정토가 아닐까요?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예불 드리며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오랜 꿈입니다. 반드시 10년 안에 이룰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주웠던 것은 대청호의 냄새나는 쓰레기가 아니었다. 김기동 씨는 <천수경>을 벗 삼아 오늘도 대청호에서 맑고 향기로운 행복을 건져 올리고 있다. 쓰레기 없는 불국토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