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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물의 신(神, 마음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體)이니, 제대로 된 물이 아니면 그 신이 나타나지 않고, 제대로 된 차가 아니면 그 몸을 나타낼 수 없다.” -<다신전(茶神傳)> ‘품천(品泉)’
우리 몸을 구성하는 60~70%가 물이듯, 차에 있어 물은 그 몸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다. 때문에 예부터 차인들은 어떤 물로 차를 우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제대로 된 물이 있어야 하고, 제대로 된 물이라도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차의 생명이 좌우된다고 여긴 것이다.
초의 스님은 “산 위의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산 아래 샘물은 맑고 무겁다. 돌 사이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달며, 모래 속 샘물은 맑고 차가우며, 흙 속의 샘물은 담백하다. … 흘러 움직이는 물이 고여 있는 물보다 나으며, 응달진 곳에서 나는 물이 양지의 물보다 좋다. 참된 근원의 물은 맛이 없으며,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고 이르고 있다.
물이 맑고 맛이 좋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지만, 오늘날 ‘좋은 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현대인들 중 산에서 흐르는 물이나 강물이라고 해서 아무 의심 없이 마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장 폐수나 각종 쓰레기, 농약 등에 오염된 물이 너무도 많은 탓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차인들은 시중에 판매되는 생수나 약수물 혹은 수돗물을 정화해서 차를 달인다. 하지만 생수는 가격도 비쌀 뿐 아니라 제품마다 성분이 다르고 개봉한 뒤 상온에 오래 두면 맛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집 근처의 약수터에서 떠 온 약수라 하더라도 탄산가스나 유황성분이 많은 물은 차의 본성을 해치므로 좋지 않다.
살균 처리를 거친 수돗물을 쓸 때는 수도꼭지를 충분히 열어 물을 흘려보내고 받은 후 하루 정도 침전시켜 윗물만 사용한다. 수돗물이나 정수기에 거른 물은 옹기 항아리나 유리병에 자갈, 맥반석, 굵은 모래 등을 깨끗이 씻어서 넣고 물을 가라앉히면 깨끗하고 맛있는 물을 얻을 수 있다. 수돗물을 끓일 때는 2∼3분간 끓인 후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놓고 잠시 더 끓여야 잡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 찻물로 쓰기 좋은 사찰 약수
산 속에 위치한 사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약수다. 인근 지역을 여행하다 찻물로 유명한 사찰을 찾았을 때 그 약수로 차를 우려 마셔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일 것이다.
▷ 해남 대흥사 일지암 유천
일지암에는 초의 스님이 “물의 여덟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평했던 샘물인 유천(乳川)이 있다. ‘젖샘’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샘물이 희뿌연 색을 띄고 있고 물맛도 달콤하다. 해남 대흥사에서 열리는 ‘초의문화제’는 이곳에서 떠 온 물로 차를 우려 부처님께 바치는 헌공다례로 시작할 정도다.
▷ 승주 선암사 돌확 약수
선암사와 칠전선원에 걸쳐 펼쳐진 1만여 평의 차밭으로 유명한 선암사. 영화 <동승>에서 동승 도념이 물을 긷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인 선암사 돌확은 차인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나무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기준으로 첫 번째 돌확은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와 차 끓이는 물로 쓰인다. 두 번째는 밥이나 국 끓일 때, 세 번째는 과일이나 채로를 씻을 때, 마지막은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하는 물로 쓰인다.
▷ 아산 인취사 샘물
백제시대에 지어져 전해오는 인취사의 샘물은 부여 고란사 샘물과 더불어 물 맛 좋기로 유명하다. 무색 무미 무취의 이 물은 차를 우리기에 더 없이 좋은 물로 꼽힌다. 인취사 샘물을 담고 있는 암반은 제오라이트(Zeolite)로, 이는 정수기에도 이용될 만큼 항균, 살균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구례 화엄사 옥천
화엄사는 쌍계사와 함께 우리나라 차문화의 중심지다. 범종각 북서쪽의 울창한 동백숲 아래서 솟는 옥천(玉泉)이 바로 화엄사 차맛의 전통을 지켜온 샘물이다. 화엄사 스님들이 찻물을 달일 때 꼭 이 물을 썼다고 한다.
▷ 강화 정수사
정수사 샘물 역시 물 맛좋기로 손꼽힌다. 지난해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으로 열린 ‘한일 차문화 식문화 교류전’에 참가한 쯔쿠다 이까씨(일차암 14대 이에모토)는 직접 정수사의 약수를 떠와 전차 시연에 사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