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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차지한 생선가게 좌판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곁으로 스님들과 신도들이 ‘남아시아 지진해일 재난을 부처님의 자비로 구호합시다’라고 쓴 피켓을 든 채 목탁을 치며 지나간다.
1월18일 오전 남양주시 화도읍내. 화도읍 수동면 사암연합회 소속 15개 사찰 스님과 신도 50여명이 지진해일 피해민을 돕기 위한 거리탁발에 나섰다. 작은 마을에서 이처럼 스님들이 탁발을 하는 모습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상점 안에서 유리문에 얼굴을 대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이날은 화도읍 장이 열리는 날. 하지만 눈이 많이 내린 탓에 행인들은 적었고, 성금을 내는 사람 역시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러자 박평종 거사(64)와 소인덕 보살(57) 김희숙 보살(44) 등 신도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상점 안으로 들어가 모금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고, 대부분의 상점 주인들은 작게는 몇 천원에서 많게는 몇 만원까지 내놓았다.
다른 신도들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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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숙경 보살(36) 역시 서울에서 왔다. 함께 온 초등 1년생 아들은 행렬 후미에서 엄마 손을 잡았다 놓쳤다 하며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자 2차선 도로는 시외버스와 트럭, 승용차 등으로 주차장이 돼버렸고, 행인들도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이곳저곳으로 몸을 피했다.
모자를 쓰지 않은 스님의 머리에 내려앉은 눈이 녹아 장삼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탁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 때 한 학생이 탁발행렬을 지나치다 다시 돌아와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과 동전을 모금함에 넣었다.
개신교 신자라는 배정준 군(화도읍 심석고 2년)은 “고마워요 학생”하며 인사를 건네는 스님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멋쩍게 웃는다.
“저는 교회 다니지만 돕고 싶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하잖아요.”
이곳 사람들은 순박해보였다. 도시 사람들처럼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화혜택을 풍족히 누리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모인 동네도 아니고. 하기야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이 가진 것과 배운 것과 누리고 있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모금함에 1만원권 지폐 한 장을 넣은 유영란(66)씨를 붙잡고 물었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셨어도 됐을 텐데요…” “그냥 넣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 돕는다고 스님들이 저렇게까지 하시는데 모른척 할 수는 없잖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배정준군과 유영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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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까지 화도읍에서 모금을 한 스님과 신도들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서는 거리탁발을 하기 위해 다시 금곡군으로 향했다. 다행히 눈이 멈췄다. 스님과 신도들의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수동사암연합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동지역 발전을 위해 사찰들이 연합한 모임이다. 회원사찰 이래봐야 15개에 불과하지만 단합력은 대단하다. 이 중에는 원불교 단체도 1곳 포함돼 있다.
“스님들과 모임을 같이 하니 즐거워요. 더구나 이런 일은 개인이 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어려운 이웃을 함께 돕고 관심을 갖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어요.”
원불교 오덕훈련원장 정인신 교무는 종교가 다르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있는 듯했다.
금곡에 들어서자 수동사암연합회장 혜원 스님이 바빠졌다.
“자, 다시 시작합시다. 이런 일(탁발)은 아무나 못해요. 춥지만 힘들 내세요. 그 사람(지진해일 피해민)들이나 우리나 다 부처님 가족이잖아요. 저 김 보살님, 이번에도 일일이 상점에 들어가셔서….”
이날 작은 마을 두 곳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될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나선 스님들의 모습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