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고대 신화로부터 동양의 노장사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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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평론가 김 효가 그간 써온 논문들을 한 권으로 묶어낸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연극 담론의 핵심인 ‘몸’의 부상이나 연극인류학에서부터 가장 원론적인 개념들, 예술의 기원으로부터 비극과 희극의 장르 가르기 문제, ‘예술성’과 ‘대중성’의 문제, 그로부터 배설된 한국연극계의 리얼리즘 강박증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다. 특히 일관되게 흐르는 저자의 철학적 좌표를 간파할 수 있다. 서구 지성사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동시에 반성적인 철학자 들뢰즈, 가따리의 사유를 바탕에 깔고 다양하게 ‘배치’된 주제를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력도 눈여겨 볼만하다. 79학번 불어과, 탈춤 반 소속, 불란서 유학파 등 그가 인생에서 겪은 고뇌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녹아있다. 또 혼돈과 잔혹의 시대를 거친 본인의 실존과도 맞물려 있다. 때문에 그가 대학시절 조동일의 책 <탈춤의 역사와 원리>를 헤집으면서 비판한 부분은 그러한 색을 잘 드러낸다. 물론 서구중심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저자가 기댄 것 역시 서구연극이론과 철학사상이다. 그러나 저자의 논지는 “우리 안의 서구중심주의”를 질타하고 반성하는데 있다. 논의의 마디마디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왜곡을 반복하는” 우리 학문풍토와 연구현실을 꼬집고 있기에 그렇다.
저자는 무엇보다 보편성이라는 환상 속에 서구의 잣대로 동양의 특수성마저 재단하려는 오류를 지적한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 ‘재현’의 역사와 비극의 범주에 이의를 제기한다. 비극은 과연 보편적 장르인가? 저자는 비극은 그리스라는 시대의 정치ㆍ사회상황의 산물이지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한편, 제의기원설이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면서 그로부터 산종되는 많은 문제들을 포착해 논의의 핵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최고의 위치에 있어왔던 비극의 위상을 재점검하면서 비극에 기준한 희극의 저급함이라는 차별성을 뒤집고, 또 ‘아트’에 대한 집착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의 갭을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이밖에도 ‘비극’이라는 경전에 주술 걸린 우리나라 전통연희연구와, 정극(正劇) 혹은 리얼리즘에 대해 목을 매는 우리 연극사 연구의 허점을 정돈해주고 있다. 서구의 지배 담론에서 배제 당한 비서구, 탈식민지적 관점의 연극적 고찰이자 사유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들뢰즈의 ‘생성’의 논리로 우리 연극에 해법을 제시한다. 전체주의적 동일자이론으로부터 탈주하여 타자(생성)의 관점에서 한국연극사 다시쓰기는 역동적인 문화상호주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초작업이라고.
원어 실력만을 키워온 듯, 편리하고 협소한 공부만을 하고 돌아온 유학파들의 지지부진한 공부 량에 비해 김효의 스펙트럼은 깊고 넓어 보인다. 서구지성사의 눈으로 다시 한국을, 그것도 서구지성을 반성하는 탈구조주의적 관점을 반향하면서 한국연극의 현실과 조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점잖은 학문의 틀로 주류를 배반하고 탈주하는 글쓰기이다. 그동안 이러한 글쓰기가, 적어도 연극판에서는 없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글은 파격이다. 나아가 문학과 예술 그 뿌리에 대한 폭넓은 사유를 열어주고 있기에 이 책의 가치는 더욱 크다.
■ 현대연극의 쟁점
김효 지음 / 1만5천원/ 연극과인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