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파고드는 겨울. 따뜻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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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보관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는 단차(團茶) 등의 덩이차나 겨울 찻잎을 따서 만든 ‘동차(冬茶)’로 겨울을 넘겼다. 한겨울에도 차를 즐기고자 했던 선조들의 차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전남 강진이나 곡성, 경남 하동 등지의 민가에서 상비약으로 준비해두었던 단차는 대표적인 겨울차다. 전차(錢茶)나 떡차(餠茶)로도 불리는 단차는 4~5월에 채취한 찻잎을 시루나 가마에 쪄 절구에 넣고 찧은 후 다식판 같은 틀로 모양을 만들어 햇볕에 말린 것을 말한다. 보통 단차는 곱게 가루를 내어 마시거나 끓는 물에 넣어 맑은 다탕(茶湯)으로 마신다. 집 처마에 매달아 1년 정도 묵힌 단차는 겨울이면 그 진가를 발휘한다. 겨울철 마실거리로서뿐만 아니라 감기에 걸렸을 때나 여행 시에 비상약으로 쓰이는 약재로서도 손색이 없다.
단차는 만들어 말리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보관이 쉽고 끓여 마시기 편리해 조선시대에 즐겨 마셨다. 근대에 들어 엽차(葉茶)문화가 발달하면서 단차의 전통이 끊기는 듯 했으나, 최근 차 동호회나 제다업체를 중심으로 단차를 만들어 마시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흔히 일본 고유의 차로 알고 있는 가루차(末茶)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즐겨 마신 전통차다. 신라인들이 가루차를 즐겨 마셨고, 고려시대 때에는 떡차를 가루로 내어 마시기도 했다. 찻잎을 통째로 먹는 가루차는 찻잎의 영양소를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 때문에 쉽게 활기를 잃기 쉬운 겨울철 비타민C를 보충하는데 제격이다.
겨울에도 잎차를 즐기고 싶은 차인들의 바람은 ‘동차’의 전통을 낳았다. 동차를 만들어 마셨다는 문헌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차를 마시고자 하는 이들이 겨울철 찻잎을 채취해 차를 만들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동차란 한겨울 눈 덮인 숲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든 차를 말한다. 양력 10~11월에 딴 차는 봄철에 돋아나는 새순에 비해 잎이 뻣뻣하고 맛과 향이 떨어지지만 싱싱한 자연의 기운을 전해준다는 특징이 있다. 근래에는 남도 야생차지기(www.sanjllo.co.kr) 회원들이 눈 속에서 딴 찻잎을 가마솥에 덖고 손바닥으로 비벼 맛을 낸 ‘동설차’를 재현해내기도 했다.
삼애다원의 ‘춘설차’도 동차의 일종이다. 광주 증심사 근처 5만여 평의 차밭이 바로 춘설차의 생산지. 해발 700m 위에 만들어진 이 차밭은 1910년경 일본인이 개량해 만든 것을 해방 후 의재 허백련 화백이 인수해 차밭으로 일군 것이다. ‘춘설차’는 봄눈 속에 갓 돋아난 여린 찻잎의 영롱한 빛깔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이름으로, 눈이 녹기 전에 돋아난 차의 여린 잎을 채취해 만든 차다.
하지만 아무리 차의 효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무턱대고 마신다면 독(毒)이 될 수 있다. <본초강목> 32과(果)에는 “차는 맛이 쓰고 달며 성질은 약간 차고 독이 없다”고 했다. 또한 <신농본초경>은 “위가 허하고 피가 약한 자가 차를 오래 마시면 정신을 상하게 되고 야위게 된다”고 적고 있다. 때문에 겨울에 차를 마실 때는 가능한 뜨겁게 마시고, 몸이 차거나 위가 약한 사람은 우롱차와 청차, 백차, 홍차 등의 발효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