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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당사자들은 서로 각각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까마귀들이 내가 조금 더 희다고 다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밑바닥에 공통적으로 놓여있는, 출가정신을 등진 추악한 탐욕을 어찌 가릴 것인가.
정재는 깨끗하게 모아지고, 깨끗하게 유지되어, 깨끗하게 쓰여져야만 정재이다. 그 정재의 한복판에서 추악한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이미 정재를 정재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폭력으로 탈취할 수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정재가 아니라 탐욕의 대상일 뿐이다.
삼보 정재를 사적인 재산으로 여기는 탐욕과 망집에 사로잡힌 하열한 출가자들이 벌이는 추악한 작태 때문에 불교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스님들 개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직도 사찰운영이 사부대중 공동체에 의해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아, 스님 개인의 치부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개인으로서의 스님에 반성없이 추종하는 신도들의 의식 또한 스님들의 잘못된 의식과 행태를 조장하고 있다. 승보를 청정하고 화합된 공동체를 뜻하는 승보를 ‘스님들(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로 규정함으로써 각각의 스님들을 중심으로 신도들이 이합집산하게 만든 업보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으로 폭력을 합리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천만 불자의 깨인 눈이 분노를 담아 지켜보고 있다. 단지 스님들 차원에서의 적절한 무마로 이 사태를 넘기려 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선은 눈앞에 벌어진 폭력에 대한 단호하면서도 엄한 단죄가 있어야 할 것이요, 삼보정재의 운용을 위한 합리적인 제도가 모든 사찰운영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폭력의 망령이 고개를 쳐든 이 사태를 계기로 그 망령의 근거지를 소탕하는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