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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365일이 문을 여는 이때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시작하십니까? 작심삼일을 염려하여 지레 새로운 계획 세우는 일을 처음부터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어떤 분이 아주 현명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삼일 이상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겠거든 삼일마다 계획을 세우라고 말이지요.
새해를 맞이하자면 자연 ‘시간’이 대체 뭘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생각하다보면 아무래도 ‘시작’이나 ‘끝’이라는 개념까지도 함께 꼬리를 물고 따라 나옵니다.
인도인들에게 있어 시작을 의미하는 말은 아디(?di)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잡다[取]’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디서부터 잡느냐에 따라 그때부터 시간은 존재하게 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사람의 한정된 사유, 치우친 분별심을 떠나서 눈을 크게 뜨고 삶을 바라본다면 애초부터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저 날마다 좋은 날이고, 여여하게 살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묵은해니, 새해니 하며 인사말을 건네는 우리의 깜냥이 안쓰럽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왕 사람이 ‘잡는’ 데에서 시간이 시작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시간은 당사자가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전적으로 사람마다 무게가 다를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새해맞이는 제자들과 함께 안거(安居) 석 달 마친 뒤에 나이 한 살 씩 더 잡숫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수세(受歲)라고 하는데 안거가 끝나는 7월 보름날에 거행되며 이 때 받는 나이가 바로 법랍인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새해맞이 행사는 요즘 우리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증일아함경>(제24권 선취품)에는 새해맞이 행사에 관한 당시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7월 보름날 밤에 부처님은 아난에게 명하셔서 모든 수행자들을 불러 모으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난아, 어서 건추를 쳐라. 오늘은 수세를 하는 날이다.”
아난 존자의 소집 신호에 맞춰 수행자들이 모여 들자 부처님은 그들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하신 뒤에 이렇게 말문을 여셨습니다.
“나는 이제 수세를 하려 한다. 말해 보아라. 나는 대중에게 허물이 없는가. 또 몸과 입과 뜻으로 범한 일은 없는가?”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묵묵히 있으면 될 것이고, 허물을 발견하였다면 그 일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던지셨고 비구들은 다들 고요히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 사리불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비구들은 여래의 몸과 입과 뜻에서 허물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오늘까지 모든 이들을 제도하시고(중략)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의 이 말로 부처님은 법랍 한 살을 더 얻게 되신 것입니다. 뒤이어 사리불 존자도 부처님과 똑같은 질문을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던졌습니다.
“그럼 이제 여래께 제 자신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저는 여래와 비구중에게 허물이 없었습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사리불은 몸과 입과 뜻에 악한 행위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대의 지혜는 아무도 따라갈 이가 없으며 욕심이 적고 (중략) 심정이 조용하여 사납지 않아서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은 부처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고 난 뒤에 그 자리에 모인 5백 명의 수행자들에 관해서도 여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자기 스스로와 타인에게 있어 티끌만큼의 허물도 없음을 확인 받은 뒤에 나이 한살씩을 더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어른인 사람이 먼저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묻고 그들로부터 청정함을 인정받은 뒤 차례로 덕담이 이어지는 과정은 언제 읽어도 저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이렇게 하여 나이 한 살을 얻게 된다면 그 숫자는 얼마나 숭고하고 정결하겠습니까. 부처님에게 있어 나이란 것은 그저 밥그릇을 열심히 비우고 주름살만 늘여갔다고 하여 얻게 되는 숫자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스스로 티 없이 맑은지를 돌아보는 일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사리불이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을 보자면, 죄를 짓지 않은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웃에게 선행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간 것을 중요시했음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 이렇게 ‘시간을 잡아서’ 나이를 쌓아간다면 훗날 거친 윤회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묵직한 자신의 연륜이 자랑스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