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고려시대 ②
고려사 건국하여 자리 잡고 송(宋)이 중국을 통치하게 되면서 차문화는 더욱 발전하여 병차(餠茶)에서 연고차라는 명품을 만들게 된다. 이에 우리도 고려 초기부터 차문화의 발전에 힘입어 도자문화가 크게 발전한다. 전대에 장보고의 해상교역으로 오월의 자기가 동양은 물론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것도 따지도 보면 차문화 발전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왕실의 여러 행사와 외국 사신 맞이, 불전행사 및 중신회의 때까지 다례를 행했고, 고승과 중신의 상사에도 많은 양의 차를 하사했다. 궁중에 다방(茶房)이라는 부서를 두어 전담관원을 정하고 관장케 했으니 제도적으로 차문화는 확신일로를 걸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향유하게 된다.
중국도 황실을 중심으로 연고차 시대가 열리므로 공다법(貢茶法)과 전매제도가 생기고 수출이 성행했으니 특히 다마(茶馬)무역은 후대까지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일본도 이 시기에는 실제 왕가나 승가에서 일부 차생활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전한다. 바야흐로 차문화가 진일보하는 시기다.
① 도자의 역사는 바로 차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송대의 오와 월의 요지가 가까운 호남의 강진을 중심으로 우리의 청자 생산이 궤도에 오른다.
② 임금이 차를 맷돌에 직접 가는 것을 보고 최승노가 “다방이라는 전담기구가 있는데 선대부터 왕이 직접 맷돌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간했다.
③ 성종이 포(布) 천필, 쌀 삼백석, 차 이백각, 향 20근을 내렸다.
④ 성종이 애도하고 다른 물품과 함께 뇌원차 이백각, 대차 열근을 내렸다.
⑤ 차는 귀한 것으로 취급되었으나 민간에서도 많이 마셨다.
⑥ 국가에서 부의품으로 차를 내리고 예식에 차를 사용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비색 청자의 다기가 생산된 것으로 차문화의 깊이를 알 수 있다.
⑦ 공신 서희의 장례에 뇌원차 이백각, 대차 십근을 내렸다.
⑧ 송의 건국은 중국 차문화를 절정기에 이르게 한다. 가장 기교적인 연고차 시대를 열고, 차에서 생기는 이득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한다.
⑨ 오숙(947~1002): 송대 사람. ‘태평어람’ ‘태평광기’의 편찬에 참가. 평소 차를 아주 좋아해서 <다부(茶賦)>를 남겼다.
왕우칭(954~1001): 북송의 문인으로 이두와 백거이를 숭상하고 한유 유종원의 문장을 따랐으며 차를 즐겨 ‘은사용봉차(恩賜龍鳳茶)’라는 작품을 남겼다.
주욱(朱彧): 북송의 문인으로 차인이다. <평주가담(萍州可談)> 세권 속에 차 얘기가 많다.
<한국>
고려시대
952 일본 장곡사에 보물 33종을 보냄
959 중국과 무역 증대
@ 청자공예가 번성하기 시작 ①
982 공덕제를 위해 왕이 차를 맷돌에 갈다 ②
천추절(千秋節)에 다례를 행하다
983 삼성 육조 삼사(三省 六曹 三寺) 설정
원구(園丘)에서 기제를 지냄
986 목(牧)에 ‘권농교서’를 내림
987 최지몽의 죽음 ③
989 최승노의 죽음 ④
990 송에서 대장경을 가져옴
80세 이상 노인에게 차를 내림 ⑤
993 비색청자의 등장 ⑥
@ 차가 부의(賻儀)품으로 쓰임
@ 궁중 진다례가 자주 행해짐
995 내시다방관원 조정
998 서희 사망 ⑦
<중국>
960 송의 건국(조광윤) ⑧
연고차 시대
공다법
차의 전매제
다마무역
989 <십국춘추>(오임신)에 차 얘기가 나옴
@ 오숙, 왕우칭, 주욱 등의 활동 ⑨
985 요의 여진정벌
@ 차겨루기에 관한 기록 ‘투다가(鬪茶歌)’
992 상평창(常平倉) 설치
<일본>
951 공야상인(空也上人)이 차를 나누어 줌
954 천태종의 선희(禪喜)가 어머니 영전에 차를 올림 <부상약기>
960 다도구(茶道具)라는 어휘가 나옴(인화사 어물실록)
970 전다(煎茶)를 금하다(양원)
980 조다사(造茶使)라는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