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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씨는 1월 7일 오후 7시30분 자택에서 숨을 거두기 하루 전인 6일까지 원불교 원음방송 ‘길은정의 노래 하나 추억 둘’을 계속 진행했다. 시청자들의 사연을 읽으면서 발음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길씨 언니를 비롯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씨는 “내일까지는 방송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튿날 방송을 진행하려는 그녀의 의지와는 달리 몸상태가 더 악화돼 길씨는 담당PD가 진행하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숨을 거뒀다.
평소 “죽을 때까지도 마이크를 놓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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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직장암 수술을 받은 길씨는 2004년 8월 골반암 전이 소식을 알게 됐고, 지난 10월 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촬영에 임했던 KBS 열린음악회 녹화장에서 넘어져 골반뼈를 다쳐 심한 통증에 시달려왔다. 넘어진 충격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노래를 불렀지만 끝까지 열창하던 그녀의 무대에 관객들은 길씨가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길씨의 부고가 전해지자 그녀의 팬사이트(kileunjung.starnstar.net)과 원음방송(wbsfm.com) 홈페이지에는 추모글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원음방송을 알게한 님이시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아이디 ‘ycnnnn’는 “당신의 맑은 음성의 아름다운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지기를 빌겠다”는 내용을, “故길은정님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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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씨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 자신의 팬사이트의 ‘길은정 일기’에 “내가 좋아하는 블루”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평소 파란색을 좋아했던 길씨가 갖고 싶어했던 것 중 하나인 파란색 기타를 국내 기타제조회사가 그녀의 이니셜을 새겨 만들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당시의 들뜬 마음과 약속이 이루어져 기타를 받게 됐지만 이미 걸을 수도 없고 욕창까지 생겨버리는 등 휠체어에서만 생활하는 그녀에게 울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길씨는 일기에서 “길은정의 노래 하나 추억 둘 송년특집 라이브 우체국을 생방송으로 진행할 때 그 파란색 기타로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주했다”며 “이젠 기타를 메고 앉을 무대도 없지만 아이처럼 자랑하고 싶어 자꾸만 꺼내보고 있다”고 뿌듯함을 나타냈다.
길씨는 또 “요즘은 책을 읽기도 어렵고 오랫동안 글을 읽고 쓰기도 어려워졌다”며 “이제 모든 것은 정신력에 달려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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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기간 동안 2002년 전남편 가수 편승엽과의 사기결혼과 관련한 명예훼손으로 법적 공방을 겪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주위의 관심과 질타를 한 몸에 받아온 길씨는 당시 “진실은 하나인데 왜 사람들은 보려고 하지 않을까”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2002년 불교방송 ‘백팔가요’의 DJ였던 길씨의 이혼사건으로 편씨와 길씨를 옹호하는 팬들의 상호 비방성 글이 불교방송 홈페이지를 연일 달구는 일이 벌어지자 불교방송 측이 개국이래 처음으로 게시판을 폐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10월 “부디 비판을 말아달라”며 “저의 외로움, 저의 고통, 저의 정신세계, 저의 진실, 저의 웃음… 이 모든 것에 가식은 없다”고 일기를 통해 말했다.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은 열정을 보여준 불자가수 길은정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수의 대신 1997년 KBS ‘길은정의 빅쇼’에서 입었던 미색 드레스를 입고 경기도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