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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스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과 생명사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백담사 만해마을’이 을유년(乙酉年) 새해 벽두부터 ‘나눔’과 ‘사랑’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사찰과 복지관차원뿐만 아니라 스님과 1대 1로 결연을 맺고 있는 전국의 불우 청소년 60여명이 나눔과 불교문화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원장 법장)이 1월 5일부터 2박 3일간 마련한 ‘조계종 결연 청소년 겨울캠프’는 살을 에고 강을 얼리는 매서운 겨울 추위를 물리칠 만큼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조계종은 결연사업을 통해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지역 사찰이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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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 스님, 아이들에 모자ㆍ장갑 선물
“형! 잘 지내셨어요?”
“이번에도 다 같이 왔네!”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월 5일 아침. 전국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조계사 앞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난 7월 수덕사에 함께 갔던 기범(19 ㆍ 대동정보산업고2) ㆍ 지현(16 ㆍ 중앙중2) 남매와 준우(11 ㆍ 청운초3) ㆍ 수연(7) ㆍ 준일(4) 남매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충남 홍성에서 올라온 화정(14 ㆍ 용호초6)이도 함께 인사를 나누며 버스에 올랐다.
곧이어 법장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중앙종무기관의 스님들이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우정국로에 나왔다. 버스에 오른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여러분들을 수덕사에서 만난지 6개월이 나 지나 많이 보고 싶었다”면서 “썰매도 타고 바다도 보면서 즐겁고 신나게 놀다가 오라”며 함께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전한다. 스님은 대신 아이들에게 모자와 장갑을 선물했다.
"시간 없어요! 빨리 눈썰매 타러가요"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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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인사에 이어 만해학술원장 김재홍(경희대 국문과) 교수가 만해 스님의 사상과 생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자와 장갑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눈썰매장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연이 끝날 때 쯤 재미없다는 표정이던 하원(14 ㆍ 신자초6)이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시간 없어요! 빨리 가요!”
강연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만해마을 옆에 위치한 한계천의 ‘만해아이스파크’로 자리를 옮겼다. 눈썰매장은 “가만히 서있으면 그대로 얼어버릴 것”같이 추웠지만 아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썰매를 처음 타보는 인혜(11 ㆍ 신내초3)는 빨갛게 달아오른 볼이 무색하게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다. “너무 재밌다”는 인혜는 함께 온 동생 채연(7)이의 썰매를 밀어주며 추위를 물리쳤다.
차맛이 우러나듯 진지함이 배어난다
저녁을 먹으며 몸을 녹인 아이들이 이번에는 학습관에 둘러 앉았다. “차를 정성껏 우려내면서 몸과 마음도 맑게 하는 것이 바로 다도의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만해학교에서 다도를 가르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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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로 잔들을 우선 깨끗하게 씻으라”는 말에 따라 아이들은 잔을 비우고 각자 직접 우려낸 차를 마시면서 다도(茶道)를 배운다. 아이들의 눈에서는 눈썰매를 탈 때와는 다른 진지함이 배어난다. 이랑(14 ㆍ 동자초6)이는 “경주 골굴사에서는 차를 만드는 과정만 봤는데, 여기서는 내가 만든 차를 직접 먹으니 더 재미있다”고 소감을 말한다.
"왜 부처님이 세분이죠?" 모든 것이 궁금하다
첫째날 늦게까지 진행된 일정에도 불구하고 둘째날 새벽 6시에 낙산사를 찾았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 해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낙산사를 참배했다. 경내를 둘러보면서 아이들은 불교를 보고 느낀다. 아이들은 “왜 여기에는 옛날 집들만 있어요?”, “법당에는 왜 부처님이 세분이나 있나요?”, “절에는 왜 이렇게 큰 탑이 있나요?”라며 잇따라 질문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곧이어 “원통보전(圓通寶殿)으로 가세요”라는 인솔자의 말에 지친 표정의 태현(14 ㆍ 동자초6)이가 “거기서 밥 먹나요?”라고 말하자 좌중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아이들은‘사찰식 부페’로 마련된 아침 ‘공양’을 하며 허기를 채웠다.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결연캠프에 참가한 이영현(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1)씨는 “사찰체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이 불교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한다. 보라(14 ㆍ 우신초6)도 “절에 와서 여러 유적들을 보면서 불교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느낌을 전했다.
'나눔'의 소중함 배운 아이들 마음 따뜻하길…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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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대용이와 함께 온 지용(17 ㆍ번동중3)이는 “막내 동생 미정이는 몸이 아파 함께 오지 못했다”며 “미정이에게는 캠프가 별로였다”고 말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정이가 너무 부러워 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과 결연을 맺고 있는 예슬(13 ㆍ 서울 효제초5)이는 “스님들이 안 계셔서 너무 허전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예슬이는 “집에 돌아가면 법장 스님께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고 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과 들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게 한 겨울 바람이 만해마을을 찾은 아이들 앞에서는 주춤한 듯 했다. ‘나눔’과 ‘함께함’의 소중함을 배운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조계종 1사찰 1가정 결연사업 현황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1사찰 1가정 결연사업 등으로 우리 불교가 사회로 회향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법장 스님은 2005년 조계종 중앙종무기관 시무식에서 올 한해 중점 사업 중의 하나로 ‘1사찰 1가정 결연사업’을 꾸준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4년 5월 6일 결연사업 계획 발표와 6월 21일 중앙종무기관 스님들과 종로구 관내 학생들의 결연식, 7월 23~24일의 수덕사 여름 캠프에 이어 이번 겨울캠프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계종은 ‘1사찰 1가정 결연사업’을 통해 사찰과 스님이 불우청소년들의 단순한 후원자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정신적 물질적으로 ‘부모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실제로 문화부장 성정 스님과 김지원(14 ㆍ 금화초6)양은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속 깊은 얘기까지 하면서 조계종에서는 이미 ‘소문난 커플’로 화제가 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와 사회복지재단은 2월중으로 전국 사찰의 결연현황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현황을 바탕으로 결연사업을 보다 폭넓게 진행하기 위해서다. 조계종 사회부의 한 관계자는 “700여 사찰이 3000여명의 학생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