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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쇠도 불에 달구면 부드러워져. 그렇게 달군 쇠를 두드려서 벼리면 내가 원하는 연장으로 바뀌지. 생쇠를 때리면 힘은 힘대로 들겠지만 결국은 부러지고 말아.”
‘불광대장간’의 주인장 박경원(68)씨가 말하는 ‘쇠의 속성’은 곧 우리네 마음 이야기와 통한다. 거짓되고 추악한 마음은 날로 꺾을 수 없다. 따뜻한 숨이 담긴 정성으로 수없이 달구고 벼리다보면 가장 온화하면서도 완전한 본디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대장간 작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박경원씨는 ‘쇠’와 ‘마음’의 영역을 수십 년째 드나들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6ㆍ25전쟁 이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대장간 일을 시작한 이래 벌써 50년째 대장장이 업(業)을 지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시골 장터마다 4~5개씩 자리 잡은 대장간에서 괭이, 호미, 삽 등의 농기구를 만들었으나, 장터를 울리던 대장간의 망치소리는 이젠 시골 사람들에게도 옛날 추억이 됐다. 그러나 박씨는 그 옛날 시골 장터에서나 마주할 수 있었던 화덕과 모루 등을 갖추고 반백년을 한결같이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다 같은 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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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번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그 튼튼한 맛을 잊지 못해 평생 고객이 된다. 쇠가 좋고 이가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기계로 대량 제작된 제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탁월해 사람들이 대를 이어 찾아올 정도다.
그 같은 고객의 귀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서일까. 박 씨는 남들은 평생 한번도 갈기 힘들다는 모루를 세 번이나 갈았다. 끊이지 않는 메질 덕이다. 어깨 근육을 쉴 새 없이 놀린 탓에 요즘에는 뼈주사에 의지하고 살지만, 매일 새벽 6시면 어김없이 화덕에 불을 지피고 일을 시작한다. 요즘 같은 겨울철은 대장간도 쉴 때지만, 그저 맥을 잇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봄, 가을 등의 성수기보다 더 많은 생산량을 내놓게 돼 스스로도 놀랍다는 박 씨다.
그러나 그에게도 ‘대장장이를 떨치고 싶었던’ 시련기가 있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경기도 신갈에서 무작정 대장간 일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수년이 지나는 동안 그 어떤 기술도 전수받지 못했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몇 년간 풀무질만 시켰다. 풀무질에 이력이 날 때쯤 되니 이젠 메질 대장정이 시작됐다. 철을 알맞게 달굴 수 있는 온도는 몇 도인지, 철의 종류마다 두드려야 하는 횟수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 알아야 할 것은 끝이 없었건만, 그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끝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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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을 굳힌 박 씨는 이후 틈날 때마다 화덕 곁에 붙어서 쇠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속에서 쇠가 녹는 온도를 감지할 길이 없었다. 쇠가 녹는다는 ‘1000도’라는 온도는 개념상의 수치일 뿐, 그 같은 열기로 타오르는 불꽃을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창 달구다보면 쇠가 불속에서 뚝뚝 떨어져 스승에게 며칠을 맞았고, 손이며 팔은 녹아내린 쇳덩이 덕에 수천 번도 더 벗겨져 감각을 잃었다. 쇠를 달구는 가장 적당한 온도인 700~800도를 맞출 즈음엔 미세한 온도 변화를 제때 잡아내지 못해 철표면에 곰보가 졌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한순간이더라구. 밥도 잠도 잊고 갈탄 연기만 마시고 살다보니 불꽃이 말을 해주데. 철 표면에 연분홍 빛이 발갛게 익어갈 때였지. 화덕 속의 불꽃과 내 속의 피가 같이 끓는 듯하더니 ‘바로 지금’이란 생각이 급작스럽게 전해왔어. 그리곤 밑도 끝도 없이 이거다 싶은 거야.”
철의 종류마다 두드려야 할 메질의 횟수, 메질로 안정시킨 철의 상태를 굳히기 위해 물을 입히는 ‘담금질’ 횟수 등도 한창의 작업 현장에서 그렇게 ‘문득’ 깨닫게 됐다. 철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쇠가 가슴에 박힌 듯 제 심장이 한층 견고해졌고, 담금질을 거쳐나온 쇠를 마주할 때는 문득 제 피부가 젖어오는 듯했다. 간간히 농기구로 내려치며 욕설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님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가 자립을 결심하자 철꾸러미 하나를 던져주며 “이것이 진정으로 네가 살길”이라 했다.
그렇게 홀로서기에 성공한 박 씨는 이곳 은평구 대조동에 자리 잡은 이래 25년째 대장간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이제는 메질이 삶이고 삶은 풀무질이라 성성한 대장간 화두가 살아있을까 싶지만, 그는 오래했다고 허투루 처리하는 법은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한다. “그 옛날 대장장이가 칼을 만들 땐 목욕재계한 후에 오직 일념으로 칼을 벼렀지. 그 칼이 팔려간 집에 도둑이 들면 누가 먼저 알아채기 전에 칼이 먼저 운다고 했어. 그 정성을 자신할 수 없으면 칼을 팔지 않아.”
그는 돈을 위해 억지로 일하는 법이 없다. 매일 아침 화덕에 불을 피우며 자신의 신체상태, 심리상태를 가만히 관한 후 ‘연장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곡차를 즐기거나 산행을 떠날지언정 대장간 작업에 한 치 미련도 남기지 않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그래서 그는 반복되는 대장간 일을 한번도 지겹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요즘에는 힘에 부친 탓에 메질을 아들 상범(36)씨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손을 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하고 있단다.
“평생 이것만 하고 산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는 그에게 다른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다. “들었지만 내가 하는 게 제일 낫다고 생각했어. 1원도 대장간일 아닌 것으로 벌어본 적이 없는데, 이 일해서 먹고 사는 게 제일 좋더라구.”
그는 손때 묻은 연장들 틈에서 갈탄 연기를 마시는 삶일지언정 매일 지혜를 얻을 수 있기에 하루하루가 맑다고 한다. 그 지혜가 무엇일까. 다음의 <법구경> 어구 안에서 그 뜻을 헤아려 본다.
“대장장이가 은의 불순물을 제거하듯 슬기로운 이는 차례로 서서히 자기 더러움을 제거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