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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오전 6시 경 보광사 새 재산관리인으로 임명받은 성비 스님측이 용역회사 직원과 정체불명의 청년 200여명을 동원해 보광사를 접수했다. 오전 5시 40분 경 검은색 점퍼를 입은 청년 100여명이 보광사 정문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보광사에 있던 현중 스님측 스님 30여명이 기와불사를 위해 준비해 놓은 기왓장을 던지고 소방호수를 이용해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양측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 성비 스님측 청년들이 보광사 옆으로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진입하자 균형이 무너졌다. 잠시 후 성비 스님측 스님들이 보광사를 진입해 보광사를 접수했다. 이 과정에서 스님 1명이 머리에 피를 흘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또 성비 스님측에서 취재를 하던 불교정보센터 기자 카메라를 빼앗은 뒤 바닥에 내동댕이쳐 박살이 나기도 했다. 당시 현중 스님은 보광사에서 떠난 상태였다.
이에 앞서 3일 오전 6시 30분경에는 현중 스님측이 스님 2~30명과 청년 4~50명(경찰 추산)을 동원해 보광사를 접수했다. 성비 스님측은 “이 과정에서 스님 2명과 남자 재가불자 1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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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11시 30분 경에는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에서 조사를 나왔다. 조사국장 혜일 스님은 “보광사가 선학원에 등록돼 있기 때문에 재산상의 문제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겠지만 관여된 스님들을 조계종 소속인 만큼, 폭력과 기물 파손이 발생됐기 때문에 승풍실추 혐의에 대해선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광사 사태를 중재하기 위한 법주사 원로 혜정, 천용, 월성, 설조, 함주 스님의 중재도 수포로 돌아갔다.
3일 오후 1시 50분 경 보광사에 도착한 원로 스님들은 현중 스님을 만나 “문중차원에서 걱정돼 왔다. 와서 보니 문제가 심각하다”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의 권유로 보광사에 온 원로 스님들은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출가본연의 길을 잃어서 그렇다. 출가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옳고 그름을 떠나 모두 탐욕의 노예가 돼 수행도량이 싸움터가 된 것이다. 모두 ‘나’라는 허상을 극복하고 참회가 필요하다”고 경책했다.
잠시 후 원로스님들은 성비 스님측(성비, 총무 황석, 남산문도회장 대현 스님 3인)과 현중 스님측(현중, 총무 스님, 박해분 신도회장 3인)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뒤 오후 3시부터 대화의 시간을 갖게 했다.
1시간 20여분이 지난 뒤 ‘5일 오후 2시에 원로스님 5인, 현중 스님측 5인, 성비 스님측 5인이 모여 회의를 열기로 한다. 단 그때까지 서로 폭력 사용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쓰기로 했다. 이 약정서에 현중 스님은 서명을 했으나, 성비 스님측에서 문도회 뜻을 알아봐야 한다며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자리를 떴다.
결국 원로스님들은 ‘양측 모두 대화를 통해 타협하라’고 당부한 뒤 오후 4시 50분 경 보광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