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집 교수의 연표로 보는 차 문화사>
13. 고려시대 ①
찬란했던 신라문화가 석양을 맞이하고 한반도에는 신흥세력들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시기여서 정치적으로 불안했다. 이른바 후삼국의 판도 안에서 한쪽으로는 전쟁을 하여 영토를 넓혔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중국, 일본과 교역을 했으나 전대(前代) 보다는 활발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고려는 건국 후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지방 호족과 불교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어, 혼인정책과 사찰건립으로 유대를 강화했다.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팔관회와 연등회를 국가적 행사로 시행하고, 궁중의 여러 의식에서도 진다례(進茶禮)를 행했다.
왕실에서는 신라의 지배계급에게 호의를 보이고 백성들에게까지 차와 복두(幞頭, 모자의 일종)를 내린 것으로 보아 민간의 차생활이 일상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교의 융성과 함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국은 당을 이은 오대(五代)로 차문화가 점차 발전해서 모문석의 <다보>나 도곡의 <천명록> 등의 다서와 함께 차를 즐기는 문인 학자들이 많았다.
<한국>
고려시대
900 후백제 건국(견훤)
910 왕건의 나주 전승
918 고려의 건국
팔관회, 북조사신 맞이 다례 ①
919 법왕사, 왕륜사 등 10여 사찰 건립
921 대흥사 건립
923 양(梁)에 간 이질(伊質)이 오백나한상을 가져옴
926 발해의 멸망
929 천축의 삼장(三藏) 스님 고려에
931 태조가 경순왕에게 차를 선물하고 백성들에게 차를 내림 ②
@ 왕실의 행사 및 태묘제의, 외국사신 맞이, 연등회, 팔관회 등의 행사 때 반드시 다례(茶禮)를 행함 ③
936 신라의 멸망, 미륵사 개태사 창건
937 운문사 창건
938 천축승 홍범(弘梵)이 진(晋)에서 오다
939 대경대사 현기탑비
943 용문사 건립, 연등회, 팔관회, 훈요십조
944 후진으로 약재 수출
949 광종 즉위
<중국>
오대
907 대량(주전충)
@ 한악, 마은, 제기, 왕정보, 피광업, 유정량, 도곡 등 차인 활동 ④
@ <광이기(廣異記)> <옥천자(玉泉子)> 등에 차 얘기
923 후당의 건국
935 ‘다보(茶譜)’ 모문석 ⑤
<일본>
헤이안
902 제호천황이 인화사(仁和寺)에서 차를 마심
910 홍법(弘法) 영전에 차를 올리다
916 우다왕(宇多王) 축연에 다례
930 다연(茶硏) 다명(茶茗)이라는 글자가 보임
946 촌상왕(村上王)이 돈실친왕에게 차를 내림
①태조는 신라문화를 계승, 음다풍속을 진작시켜 모든 국가적 행사에 진다례를 행하게 했다. 특히 북조사신을 맞는 다례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② 태조 때 군민과 승려들에게 차와 향 그리고 복두를 내렸다.
③ 고려 왕실의 모든 의식과 특히 종교의식 및 대외적인 행사에는 빠짐없이 다례를 행했다.
④ 한악(844~923) 당나라 사람으로 <전당시>에 전하는 ‘금란밀기’에 당대 차의 제도에 관해 쓰여 있다.
마은(852~930) 오대 초국을 세웠다. 차를 팔아 크게 돈을 모아 그를 바탕으로 힘을 키웠다.
제기(863~937) 당대 승려시인으로 ‘시격’ ‘백연집’이 전하고 특히 다시에서 선(禪)과의 관계를 노래했다.
왕정보(870~940) 그가 쓴 ‘당척언’ 중에 나오는 연회석의 차 얘기를 널리 알려져 있다.
피광업 피일휴의 아들. 차를 아주 좋아해 ‘고구사(苦口師)’란 별명이 붙었다.
유정량 차를 좋아해 ‘다유십덕설(茶有十德說)’을 말했다.
도곡(903~970) 차를 무척 즐겨 당희와의 설수차(雪水茶) 얘기가 유명하다. ‘천명록’과 ‘다술’이 전한다.
⑤ 모문석 오대의 사람으로 ‘다보’(茶譜)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