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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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따라 욕심버리고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의 새해 법문

또 다시 출발선이다. 을유년 새해 새날 앞에 모두가 똑같은 마음으로 서있다.
새해에는 해야 할 일도 많다. 지난 한해가 힘들었던 만큼 새해에 거는 기대도 크다.
광주에 거주하는 두 가족이 하나같이 큼직한 보따리를 짊어지고 순천 송광사를 찾았다. 새날 시작에 앞서 조계총림 방장 보성 큰스님에게 점검받기 위해서다.

보성 스님은 순리에 따라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하며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여들 와, 강원 스님들과 울력하다가 여러분들 온다기에 올라 왔어.”

방장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길상헌(吉祥軒)은 송광사 계곡의 물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해 있다.
두어 평 되는 스님 방에 보덕행 보살 가족과 천달 거사 가족이 들어서자 꽉 찬다.
한지로 도배한 벽엔 가사 장삼이 걸려있고, 경상에 스님이 보던 책 서너 권 놓여있을 뿐 단출하기 그지없다.

“새해라고해서 왔나본데 별거 없어. 매일 매일이 정월 초하루야. 매일 조금씩 바꿔지면 되는 거지. 그저 좋은 습관 들이면 돼. 노력하지 않고 요행이나 바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돼. ‘저 사람은 잘 풀리는데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뒷면에 있는 노력을 보지 못해서 그런 거지.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이야기나 들려줄게 들어봐.
청담 스님이 도선사에 계실 때였어. 하루는 어느 보살이 허겁지겁 절에 오더니 털썩 주저앉으며 땅을 치며 막무가내로 우는 거여. 한참을 울다가 청담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는 거여.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전갈이 와서 뒤를 따라갔대. 그런데 도시락까지 메고 가던 아들이 학교 옆 골목에 들어가더니 넝마로 바꿔 입고 나오더라는 거여.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 길에 절에 와서 울었던 거지. 청담 스님에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소연을 했지. 그래 스님이 ‘보살은 뭐하는가’고 물었어. 보살 말이 봉사단체에 가서 봉사활동 열심히 한대. 거사는 회사 다니고 살림은 친정어머니가 한다는 거여. 그래 청담 스님이 ‘제 살림도 못하면서 무슨 봉사냐’며 불호령을 내리고 법당 가서 절하라고 했어. 일주일간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기도하라고 했지. 그러면서 공양주 불러놓고 ‘이 보살 밥 먹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니 누룽지도 줘서는 안된다’고 단도리를 했어. 보살이 그대로 법당에 가서 절을 하는데 엿새쯤 되니 헛것이 보일만도 하지. 기도하던 보살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눈에 왕십리 역이 보이고 넝마아들이 서 있는 거여. 기도 마치고 역에 가니 정말 아들이 있더라네. 엄마를 본 아들이 깜짝 놀라더니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따라와서 잘못을 빌더래. 그래서 사람구실하게 됐지.
사람은 누구든지 어려운 고비가 있는 것이여. 고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가 중요해. 내가 갈 길을 분명히 찾아서 갈 줄 알아야 해. 넝마아들 구해낸 보살처럼 몸을 돌보지 않고 노력(기도)하면 뜻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우리가 사는 허공에는 그런 에너지가 충만해 있어. 다만 끌어다 쓰느냐, 못쓰느냐는 각자가 할일이지.”


'스스로 이겨내겠다' 마음먹고
이웃 눈치 볼 것 없이
내 일에 최선 다하면 그만



지내놓고 보면 다사다난하지 않은 한해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지난 2004년은 유난히도 힘들었던 해였다. 모두들 ‘어렵다, 어렵다’ 뿐이었다.

송정리에서 사업을 하는 보덕행 보살 가족도 마찬가지다. 세 자녀와 부부가 ‘어려울수록 웃음만은 잃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짜증난 일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보덕행 보살이 스님에게 ‘어려울수록 살아가는 지혜’를 물었다.

“스님, 경제가 어렵다보니 모두들 하루하루 생활에 지쳐갑니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작은 일에도 터져버릴 듯 가슴 조이며 살고 있습니다.”

“나를 잘 길들여야 하는 기라. 요즘 사람들 보면 남을 좇아가기 바빠. 뷔페음식 먹을 때 보면 알 수 있어. 다 먹지도 못하면서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 와. 남이 가져가니까 가져오는 것이지. 자기가 먹을 만큼만 가져오면 문제가 없는데도 그래. 깨끗이 먹고 치울 줄 아는 사람은 어디에 있더라도 걱정 없는 거야.
절대로 어렵다고 생각하면 안돼. 문제가 있으면 내가 해결해야해. 넝마아들 사람 만든 보살처럼 일심으로 하면 참 은인이 나타나. 우리 주위에는 그런 힘이 가득해. 자기가 끌어다 쓸 줄 알아야 해.
요즘 스님네들도 자꾸 절을 고치는데, 내가 그러지 말라고 해. 부처님은 좋은 조건에서 공부 안했어. 평생을 길에서 빌어먹는 걸사였어. 비 새면 천막으로 덮으면 되지. 괜히 절 고쳐주는 척 하면서 밥 빌어먹으려면 나가라고 해. 설령 절이 비어도 그런 이들이 절에 있으면 안돼. 지난번 태풍 매기 때 산중의 중이 하나 와서 며칠 굶었다고 사정한 일이 있지. 전기도 끊어지고, 가스도 떨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호통을 쳤지. ‘이놈의 중놈이 절에서 빌어 처먹으니 절이 다 망한다. 당장 나가그라. 산에는 흘러가는 물도 없고, 나무도 없드냐.’
어쨌거나 승속을 떠나 모두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 이웃사람 눈치 볼 것 없이 자기일 자기가 하고 살믄 돼.”

요즘 생활이 어렵다고 하는데 ‘왜’ 그러한가 곰곰 따져보면 이구동성으로 ‘물질적으로 너무 풍족했다’고 말한다. 있다가 없으면 힘든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방장 스님은 결국 ‘스스로 이겨내겠다’는 각자의 마음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그러면서 방장 스님은 “사람마다 갈 길이 있고, 남에게 묻지 않는 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회사에 다니는 천달 거사도 역시 현재의 사회가 걱정이다.
“근래 들어 가정파괴 현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가 하면 가족이 동반 자살하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불자로서 안타깝고 마음을 내어보건만 더욱 충격적인 일들이 늘어갑니다”

“자연은 순리가 있어. 그것을 거역하면 문제가 생겨. 사람도 순서를 벗어나 억지로 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만남도 그러해. 억지로 만나면 얼마못가서 갈라서기 마련이야. 뭔고 하면 욕심을 버려야 해.
보성 스님은 추운 날씨에도 대중울력에 동참하고 포행을 하며 화두를 놓지 않는다.
허욕을 절에서는 번뇌망상이라 하제. 요것에 빠져 기어코 끌고 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고집’이야. 고집이 바로 금강경에 나오는 아집이고 아상이야. 아상이 없으면 문은 다 열리는 거여. 요새 사람들 공부해야 해, 그리고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해. 그래서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지. 그랬을 때 ‘복과 지혜’를 갖춘 이가 되는 기라”

벌교에 사는 보덕행 보살의 모친 연화월 보살은 4남매를 다 키우고 이제는 손자들 커가는 모습을 낙으로 삼아 살고 있다. 수없이 찾았던 큰 절이건만 방장 스님 앞에 나서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큰스님 방에 함께 했다. 숱한 세월을 두고 방장 스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으련만 그것이 무엇일지 자못 궁금했다.

“나이 70이 넘으니 주위에 떠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혼자되는 이들을 보면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다 싶습니다. 남은 시간 어떻게 살아야 되나 염려스럽습니다.”

“이제 자기 일 하세요. 아들 딸 걱정 말고. 평소 하던 염불 있으면 열심히 해요. 얼마 전에 98세 된 노보살이 몸을 바꿨어요. 만나면 항상 ‘염불 잘 하세요’ 하면 ‘잘 합니다’ 그래요. 하루는 며느리에게 ‘너그 시어머니 어쩌노’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며느리가 아침마다 하루 먹을 밥과 반찬만 방에 넣어드리고 밖으로 못나오게 밖에서 문을 잠가버린다고 해요. 왜 그런고 하니 하루종일 염불하겠다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거요.
얼마 전까지 노보살 만나면 그러죠.

‘그래 할망, 친구 좀 있소’
‘친구 많이 있어요’
‘무슨 친구가 그리 많노’
‘아미타 친구요’

노보살은 평소 ‘추접한 것 보이지 않고 갈란다’고 해요. 하루는 아들이 출근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인기척이 없어요. 여기저기 찾다보니 화장실에 앉은 채 고개 푹 숙이고 있더래요. 마지막까지 더러운 것을 변기에 버리고 갔던 거요.
보살님도 앞으로 그리 해요.”

있다가 없으면 힘든게 당연
순리에 따라 욕심 버리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노보살을 향해 ‘옆 사람에게 거북하게 하지 말고, 아들딸이 죽이라도 끓여주면 그저 고맙다고 받고 내 할일 하고 간다는 생각으로 염불하라’고 당부하던 스님은 성에 차지 않는지 염불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인다.

“내 집안에 평소 욕을 잘하는 형수가 있어요. 이놈의 할망구가 입만 벌리면 어찌 욕을 하든지 아들 딸, 사위가 힘들어해요. 하루는 애들이 나를 찾아와서 어떻게 해달라는 거요. 그래서 할망구를 불러다 하루에 아미타불 3만독씩 하라고 했어요. 하루 3만독 하지 않으면 밥 먹지 말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하겠다’고 해요. 한 3년 열심히 하니 그다음은 이웃사람이 와서 시비를 걸어도 대꾸를 안 해요. 염불하면 그렇게 돼요. 그러다가 하루는 아들보고 오라하더니 아들 무릎을 베면 시원하겠다며 누웠지요. 아들이 어머니 머리를 쓰다듬다보니 이상하더래요. 그대로 간 것이죠.”

평소 학인스님들 사이에서는 사나운 사자와 같던 방장스님이건만 재가불자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가 되셨다. 스님은 보덕행 보살 딸들에게 경상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용서>란 책을 들어 보이면서 읽어보라 권했다.

“삼국지 세 번 읽는 것보다 이 책 세 번 읽는 것이 낫다. 느그들 인생이 바뀐다.”

스님은 그러면서 ‘투자’를 강조했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스님이 강조한 것은 다름 아닌 ‘진짜 내 살림살이’였다.

“아이를 태중에 가지고 있을 때 하는 열 달 투자가 제일 큰 거여. 그보다 더좋은 것은 아이를 가지기 전에 좋은 습관을 기르는 투자가 중요해. 잘못된 습관이 있으면 바로 고치도록 해. 어려서부터 투자해놓으면 커서 아이 가질 때 편안한 거야. 낳을 때도 편안하게 낳아. 사람간의 만남도 순리대로 되지.”
올 겨울에 쓸 나무를 정리하다 들어오셨다는 보성 스님은 주섬주섬 작업복을 찾아 걸쳤다.
“이제 그만하고 가 봐. 나도 하던 일 마쳐야지.”



<보성 큰스님과의 만남 이모저모>

조계종
보성 스님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고영배 기자.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친견에는 광주에 사는 천달 정성택 거사(46)와 해소 박상순 보살(40) 부부, 보덕행 김수자 보살(50)과 고경민(대3) 민정(중3) 상필(초등4) 등 세 자녀 그리고 모친 연화월 장금옥 보살(72)이 동행했다.

스님방인 ‘길상헌’에 들어서자 한눈에 무소유하는 스님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었다. 벽에는 가사, 장삼만 걸려있고 경상에는 책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그밖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전화기 뿐이었다. 근래 읽으신 책인 듯 위쪽에 <진각국사 어록 역해>가 놓여 있고 달라이 라마의 <용서>와 티베트 수행서 <람림>도 눈에 띄었다.

스님은 “절은 공원이 아니라 수행하는 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다”고 운을 뗐다. “자신을 점검해 보면 허송세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듯 조곤조곤 말씀을 이어갔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스님은 “방바닥이 뜨끈하제”하면서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나서 방에 불을 넣었다”며 도리어 미안해했다.
큰스님 친견을 마치고 천달거사 내외는 “살아가면서 스승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번 알게 됐다”며 “검소하게 사시는 스님을 뵌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었다”고 말했다.

보덕행 보살 자녀들도 “큰스님이라고 해서 엄한 분인 것 같아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대해줘서 편했다”며 “스님 말씀대로 좋은 버릇 길들이며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보성 스님과의 만남은 나무울력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스님이 일어설 때까지 두 시간 가량 계속됐다.
송광사=이준엽 기자 | maha@buddhapia.com
2004-12-31 오후 1:06:00
 
한마디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둥글고 또한 밝은 빛은 우주를 싸고 고르고 다시 넓은덕은 만물을 길러 억만겁토록 변함없는 부처님전에 한마음 함께 기울려소 찬양합시다.--찬불가--
(2005-01-06 오후 1:27:28)
42
semiboa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기사 많이 써 주세요
(2005-01-01 오후 5: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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