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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열화당)는 고은 김지하 신경림 조정래 황석영 황동규에서부터 공지영 안도현 배수아 장석남 김연수에 이르기까지 우리시대 대표적인 문인 71명이 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문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밝힌 책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우리시대 문학가들이 ‘문학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성찰(省察)로서, 한 시대의 사상과 정서를 담아내는 문학작품이 탄생하게 된 원천인 작가의 ‘내밀(內密)한 문학사(文學史)’이자 ‘자기고백록’이다.
한국 시단의 원로인 신경림씨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나무를 심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내가 심은 나무가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단 열매를 맺어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보고도 그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들 무슨 상관이랴, 그 나무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보는 사람, 아는 사람에게는 큰 기쁨을 줄 것인데”라고.
시인이자 평론가인 남진우씨는 문학을 ‘설산(雪山)’에 비유한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그토록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그것이 내 마음속의 숭고함이란 감정을 자극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한때 꿈꾸었던 문학이란 것이 아마 바로 저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멀리서 고고하게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있는 의연한 존재. 만인이 우러르며 숭모하는 거대한 부동의 중심이 나에게는 문학이었다.” 그러므로 남진우씨는 본인의 마음속 순결한 설산을 향해 다만 걸어갈 뿐이라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시인 고은씨는 불가피성 말고는 본인 삶의 궁핍한 역정 가운데서 문학의 이유를 찾아낼 다른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저 시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밀물이었다. 그저 시인이 되었을 뿐이다. 썰물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이렇듯 문학을 하게 된 동기와 문학을 본인 삶의 뿌리로 자부하는 갖가지 이유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발레리는 “나는 약하니까 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핍돼 있기 때문에 쓴다는 얘기다. 발레리의 경우처럼 문학은 대개 세상과의 불화의 기록이다.
오백 년 전 김시습은 “끝없는 시름 솜과 같아 닿자마자 달라붙으니/ 맑은 시 아니고는 고칠 수 없네”라고 노래했다. 하루에도 수백 수의 시를 지어 물에 띄워 보내며 세상의 시름을 달랬다는 김시습의 일화는 꽤 알려져 있다. 실존적인 것이든 본능적인 것이든 혹은 사회적인 것이든 문인들은 결핍들 때문에 그것들을 이기려고 글을 쓴다. 그리고 문인들은 사람과 세상을 온전히 그리고 열렬히 사랑하기 위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결핍이라 불릴 만한 것을 해결하지 않는 한 문인들은 세대를 바꿔가며 새롭게 등장할 것이고, 또 독자들은 결핍의 소산인 문학 작품들을 끊임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하고, 그 실천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다”고 말한 빅토르 위고의 진술처럼 말이다.
'나는 문학을 왜 하는가-우리시대 문학가 일흔한 명이 말하는…‘
열화당 펴냄 / 1만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