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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달랐다. 동양에 대한 그의 태도는 쌍무적이었고, 진정한 상호성을 원칙으로 했다. 동양만이 톨스토이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톨스토이도 동양의 정신적 유산에 다가갔다.
기존 동서양의 편협한 상호인식, 그리고 소통을 위한 대화. 책 <톨스토이와 동양>은 평행선상에 서 있는 동서양의 만남들을 ‘톨스토이’라는 인물에서 그 접점을 찾고 있다. 때문에 논의 초점은 동서양의 관계성 조명, 톨스토이의 동양관 성립과정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
지은이 모스크바대학 김려춘 교수는 우선 이 책의 서두를 톨스토이의 동서양 관계부터 규명하는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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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톨스토이의 동양관은 그의 문학사상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보편적 진리를 향한 모색 과정에서 그의 동양체험은 많은 공명을 일으킨다. 최소한 동양은 지적 확장을 위한 지식의 대상이 아니었고 자신의 정신적 발전을 위해 동양은 지혜 그 자체였다.
그럼 톨스토이가 경험한 동양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생 말년에 접한 노자의 <도덕경>이다. 이를 통해 톨스토이는 동양의 모든 것을 ‘자기화’ 한다. 또 노자의 무위론은 그의 학문적 세계관에 일대 전환을 일으킨다. 무엇보다도 노자의 자유로운 사고방식, 표현의 간결성, 단편적인 구상 등은 톨스토이가 독자적인 사고를 하는데 자극제가 됐다. 심지어 톨스토이는 1891년 자기 생애에 큰 영향을 끼친 11권의 서적 리스트를 엄선할 때, <복음서>와 함께 <도덕경>을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을 정도였다.
톨스토이는 노자로부터 배운 무위의 삶을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충고할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 한 가지를 말하고 싶다.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일을 중지하고 주위를 살펴보라. 즉 무위의 삶을 살아보라. 그리고 나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라고 싶다.”
톨스토이와 노자의 사상적 해후는 시공을 초월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주는데 충분하다. 물질숭배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성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사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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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직후, 1904년 미국 ‘노스아메리칸’ 지가 “러시아와 일본 중, 당신은 어느 쪽인가 아님 양쪽 다 반대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러시아도 일본도 아니다. 정부의 기만에 속아 자기의 행복과 양심을 버리고, 신앙에 어긋나는 전쟁을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양국의 인민들의 편”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그의 반전관은 1906년 조선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토 히로부미를 ‘미치광이’, ‘타락한 무도의 인간’이라고 극렬히 비판한다.
톨스토이와 동양의 관계를 고찰한 이 책은 그 중요한 취지에도 아쉬운 대목이 곳곳에 발견된다. 8편의 논문에서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등 밀도가 떨어진다.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지 않고 출간한 책이라는 의구심을 거둬낼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최소한 ‘눈 푸른’ 러시아의 문학가 바라본 동양에 대한 시선들이 담겨졌기에 그렇다.
‘톨스토이와 동양’
김려춘 지음 / 이항재 외 옮김
인디북 펴냄 /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