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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년 숭인(崇人)문하에서 14세의 나이로 출가한 서산대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전국에 격문을 돌려 각처의 스님들이 구국에 앞장서도록 독려했다. 의승 1천500여명을 모집해 평양을 탈환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같은 공적을 기려 선조는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라는 직함을 내렸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군직을 제자인 유정(惟政)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에 들어가 참선에 매진했다.
한양에 돌아온 선조는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 扶宗樹敎 普濟登階尊者)’라는 최고의 존칭과 함께 정2품 당상관 작위를 하사, 그의 공적을 치하했다.
이후 참선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던 중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가부좌를 튼 채로 입적했다. 당시 그의 나이 85세(법랍 67세)였다.
한편, 2005년 1월6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서산대사를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