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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랫동안 각종 봉사처를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을 돌아보면 즐거운 일 보다는 눈물이 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세상에는 그늘지고 소외된 삶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면 눈물만 흘러내리기도 한다. 힘들고 그늘진 곳에서 나를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갔고, 그곳이 차츰 세간에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봉사자들이 많이 생길때면 언제라도 산뜻하게 떠나버리는 것이 지금껏 해온 나의 봉사방법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시작했다 몇 달 못가 문을 닫은 병원봉사는 힘든 경우였기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서울에 있는 모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활동을 시작한지 2년째가 되었다. 요즘처럼 가정경제가 어려워지자 병동의 입원환자들은 차츰 가정간호로 돌아가고 있다. 호스피스 대상자들이 줄어들게 되자 봉사자 인력은 남아돌게 됐다. 어느날, 병원직원에게서 봉사자가 없어서 3년째 비워둔 놀이방을 운영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평소 어린이를 좋아하고 보육교사 자격증도 있기에 쾌히 승낙을 하였고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몇몇 법우들과 놀이방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관 13층에 있는 무료놀이방은 소아과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운영되었다. 처음 놀이방을 찾아가서 문을 열어보니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병원측에서는 그저 공간만 봉사자들에게 제공해 주었을 뿐 일체의 보조는 없었다.
놀이방 이용자는 대부분이 입원 어린이와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아이, 엄마가 진료를 받는동안 아이를 맡기기도 하는 다양한 공간으로 제공되었다. 간병인과 보호자들도 따끈한 차 라도 한잔 하면서 잠깐씩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우리 봉사자들은 배려를 해주었다.
병원내에는 교회가 아주 번듯하게 세워져 있고 천주교에는 원목실과 집회할 수 있는 대강당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불자를 위한 법당은 없다. 호스피스활동을 하다보면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중에는 스님의 손이나 장삼자락이라도 잡고자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있다. 소아과병동에서는 어린아이가 고열로 입원하고 있을 때나 큰 수술을 받고 있을때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법당을 찾는 부모들을 볼 수 있다. 불자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스님을 의지하고 싶어지고 부처님을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든가?
그래서 놀이방이 비록 불상은 모시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며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길 바라면서 열심히 꾸려왔다. 불자봉사자들이 후원금을 모아 청소기, 비디오, TV, 걸레, 냉장고, 장난감과 동화책을 구입하기도 하고 색종이 크레파스 등 각 문구류들을 준비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운영해 오던 놀이방을 병원측 무성의에 반발하여 문을 닫게 되었다. 하루에 20여명이 다녀가는 놀이방을 6개월동안 장난감 소독조차 한번 해주지를 않았고, 손 씻을 종이타월도 마련해 주지 않아서 봉사자들이 빨아대는 수건으로 환아들의 손을 씻어주었다. 주말을 쉬고 월요일에 출근해 보면 놀이방이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또한 우리가 붙여놓은 무료놀이방 홍보물 포스터도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병원측에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물어보면 “누가 문을 열어주었을까? 우리는 교대근무를 해서 잘 모르겠네요...” 하며 말꼬리를 돌리고 만다. 그렇게 무성의한 병원측에 실망한 봉사자들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며 마음이 떠나갔다.
입원해 있는 동안 놀이방을 자주 놀러오던 아이가 퇴원하는 날이면 봉사자들은 색종이로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로 건네기도 하고 연꽃 컵등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몸이 아파서 짜증을 부리는 어린아이를 달래주려고 함께 색종이접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서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많이 모인 날에는 비디오를 틀어주거나 손가락인형을 갖고서 구연동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놀이방을 찾아오는 환아의 부모님들과 방문객들은 우리 봉사자들에게 너무 좋은일을 한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가끔 불자를 만나면 부처님 말씀도 전할 수 있어서 날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구의동 우리집에서 휘경동 경희의료원까지 가려면 하루에 8번씩 차편을 갈아타야만 했지만 어린이들을 위하고 또한 한명의 불자라도 만나기 위하여 나는 힘들어도 힘든줄 모르고 날마다 그 길을 다녔다. 병원측의 무관심과 무성의에 화가난 법우들은 병원봉사를 포기하고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해져서 봉사자들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부처님 마당을 찾아 다녔고 곳곳을 두드리며 봉사자를 한 두명 이라도 보내달라고 간청을 드렸다.
그러나 모 스님은 내가 하는 짓이 어리석어 보인다는 듯이 “보살! 공연히 힘 빼지말고 그만둬... 지네들이 부처님 보고 싶으면 법당으로 오면 되잖아... 우리 스님들 그렇게 힘든일 하기 싫어하니까 복잡한 일 만들지 말고 쉬어...” 하신다.
친분이 있는 불자들은 “어느 스님이 운영하는거야? 무슨 단체에서 하는데? 우리 스님은 다른데 가서 봉사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셔서 안돼...” 하며 명분이 있고 알려진 일이 아니면 선뜻 나서주지를 않았다. 혼자서 애닯은 시간을 보낸지 얼마안되서 놀이방이 문을 닫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는 정말 혼자서는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 능력의 한계를 생각하며 길위에 쓰러져 울고 말았다. 병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있는 그들에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병원내 작은 법당이 꼭 생기기를 발원한다.
퇴원을 하면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떼지 말라고 약속하던 아이들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늘상 함께해준 법우들에게 마음고생만 시킨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부질없는 짓 이겠지만 혹시라도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서 원력 큰 불자가 나타나 그 병원에 맑은 옹달샘 같은 법당이 자리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