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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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이미령 위원의 <행복을 찾아주는 부처님 말씀>

알라위 지방에 살고 있던 한 가난한 농부는 자기 마을에 부처님께서 도착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일을 끝내고서 부처님을 뵈러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유일한 재산인 황소가 간밤에 고삐를 풀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농부는 먼저 소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소를 찾아 온 들판을 헤매었습니다.

농부가 이처럼 소를 찾아 헤매는 동안 그 지방의 한 신자 집에 머무신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공양을 모두 끝마치셨습니다. 공양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설법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그날은 어쩐 일인지 부처님께서 묵묵히 앉아 계실 뿐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그 농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 간신히 소를 찾아 마굿간에 매어놓은 농부가 헐레벌떡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신자들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 집주인에게 물으셨습니다.
“혹시 남은 음식이 있소? 있다면 이 사람을 우선 좀 먹여야겠소.”

농부는 부처님 덕분에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밥을 다 먹고 오자 그제서야 부처님은 차례로 법을 베푸셨습니다. 그 법이란 바로, 계를 지키는 것, 보시 공덕을 짓는다는 것, 좌선 수행, 그리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는 것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농부와 그 집주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 ‘수행자가 도달하는 작은 깨달음의 자리’에 도달하였습니다.

설법이 끝나고 부처님과 비구들은 제타바나 수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기 전에 농부의 식사를 먼저 챙겨서 먹인 것은 좀 뜻밖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의 말은 옳다. 하지만 나는 그 농부가 이제 진리를 받아들일 인연이 무르익었음을 알았기에 그곳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여래의 법문을 듣다가 배고픔을 느낀다면 그는 배고픔 때문에 여래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할 것 아니겠느냐? 그래서 여래는 먼저 그의 배고픈 고통부터 해결시켜 준 것이다. 그 농부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설법하는 곳으로 오려 했다가 황소를 찾아 온종일 헤매었을 터이니 얼마나 피곤하였겠고, 또 얼마나 배가 고팠겠느냐?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서 배고픔처럼 견디기 어려운 고통도 없느니라.”(<법구경> 203게송의 인연이야기)

몇 해 전 어머니와 서울 영등포의 한 공원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마침 바로 옆 지하철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근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었지요. 아파트로 들어가려면 그 공원을 거쳐야했는데, 구청에서는 사람들의 통행을 위해 길을 만들고 보도블럭을 깔끔하게 깔아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좀 빙 돌아서 가야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그 길을 무시하고 자연스레 난 잔디밭 사이를 걸어갔습니다. 잔디밭으로 지나가지 않게 하려고 밧줄로 경계를 쳐놓았지만 백이면 백 사람 모두 다 그 밧줄을 넘어서 집으로 향해 걸어갔습니다. 저는 바로 옆에 깔끔하게 마련된 길이 있는데도 그 길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마음을 아셨는지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다녀야 그게 길이다.”

불교의 장점은 세상에 본래부터 있어왔던 이치를 부처님께서 밝혀내셔서 그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종교계에서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려고 나서고 있습니다.

갈등과 폭력, 그리고 무관심이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종교인들이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은 참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자칫 “우리 종교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이 문제를 이렇게 보아야 한다”고 강요할까봐 좀 두렵습니다. 그러다가는 자칫 사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사람이 될 것만 같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자연스레 지나다니는 길을 구태여 막아버리고 “왜 새 길을 걸어가지 않느냐”고 강요하면서 옛 길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허물을 씌우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방식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사람을 붙잡기 위한 덫일 뿐이며, 자신들의 이론과 방식(길)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배고픈 농부에게 법보다 밥을 먼저 주신 이유는 바로 ‘사람이 먼저’였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2004-12-23 오후 1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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