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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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에서 만난 불자들
"나눔과 순환은 생활속 불법 수행이죠"
아름다운가게에서 만난 불자들.
“이 스웨터는 얼마예요?”
“2천원입니다. 며칠 전 한 아주머니가 기증한 옷인데, 무척 아끼던 것이었다고 해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 장난감에서부터 옷과 식기, 책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가게’다. 누군가가 사용했던 ‘사연 있는 물건’을 기증받아 깨끗이 수리해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가게는 지난 2002년 ‘나눔과 순환’을 화두로 삼아 서울 안국동에 1호점을 개장한 이후 불과 2년 만에 전국적으로 34개 지점이 문을 열었다.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상생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가게의 이념은 불교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가게 운영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무보수로 도맡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불자들도 많다. 아름다운 가게 삼선교점의 점장 맹행일, 봉은사점 명예점장 김경남, 시계 및 귀금속 수리 봉사를 하는 강용배씨가 바로 그들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만난 불자 봉사자들은 한결같이 “가진 것을 베풀고 나누며 살다보면, 어느새 부처님 법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아름다운 가게 2호점인 삼선교점의 점장 맹행일(63)씨는 석유화학 기업체 임원으로 일하다 2002년 퇴직한 후 봉사활동으로 삶을 회향하는 불자다. 참여연대에서도 봉사를 하는 맹씨가 아름다운 가게의 점포를 도맡게 된 것은 평소 그가 고민해오던 환경문제의 해결점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게의 시계와 귀금속을 수리하는 ‘시계 의사’ 강용배 씨.
“자신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쓸 만한 물건을 기증하는 것은 환경파괴와 자원낭비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보시이기도 합니다. 자원도 아끼고 남도 도울 수 있으니 모든 행위가 곧 선업을 쌓게끔 연결되어 있는 셈이지요.”

맹씨는 이것이 바로 아름다운 가게에서 말하는 ‘그물코 사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물코 사상’이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며 <화엄경>에 나오는 ‘제석천의 인드라망’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맹씨와 함께 삼선교점에서 일하는 불자 자원봉사자 오정자(53)씨는 “요즘 멀쩡한 물건도 마구 버려지는데,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버려질 물건들이 새 인연을 만나는 것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찰로서는 부천 석왕사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연 봉은사점은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차원을 넘어 수익금을 불우 청소년 장학금으로 이용한다. 봉은사 점의 명예점장 김경남(50)씨의 ‘법보시가 보시 중의 제일’이라는 평소 신념 덕분이다.

서산·사명장학회 회장이기도 한 김씨는 아름다운 가게가 봉은사에 유치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수익금을 장학사업에 쓰도록 제안한 장본인이다. 봉은사점에서 나오는 불우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지원되며, 그중 일부는 봉은사에서 운영하는 서산·사명장학회에도 분배된다. “더 많은 기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한 명이라도 더 장학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김씨는 “그러기 위해선 기증품이 지금보더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봉은사점은 하루에도 사찰신도 200~300명이 들를 뿐 아니라 타 지역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은 기증품이 들어온다. 하지만 정작 수리해서 쓸 수 있는 물품은 5~6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기증품이 될 수 있을까’하고 주저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부처님이 낡은 가사를 걸레로도 쓰고 나중에는 흙과 함께 섞어서 벽으로 바르는 데까지 썼듯이, 아무리 하찮고 낡은 물건이라도 모두 쓰일 곳이 있습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 나에게는 소용이 닿지 않지만 쓸만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게 기증품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품을 수리하고 깨끗하게 다듬는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가게의 진열장 위에 오른다. 물품을 수거하여 분리하는 자원봉사자부터 구두수선 봉사자, 세탁 봉사자, 기계 점검을 맡은 봉사자 등 아름다운 가게를 돕는 손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아름다운 가게의 시계와 귀금속을 수리하는 ‘시계 의사’ 강용배(50)씨 역시 드러나진 않지만 묵묵히 봉사를 하고 있는 불자다. 그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지만, 1992년 장애인 전국 기능대회 시계수리 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시계회사에서 8년간 책임자로 근무했던 시계 베테랑. 강씨의 손을 거치면 아무리 망가진 고철 시계라도 말끔히 되살아난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보내온 시계들인데, 400개 정도 될 거에요. 시간이 날 때 마다 수리하고 있지요.”

17일 강씨가 운영하는 암사동 시계점 ‘보석당’을 찾았을 때 한 구석에는 고장난 손목시계들이 보따리 가득 쌓여 있었다. 강씨의 손을 통해 고쳐지는 시계들은 한 달에만 줄잡아 백여 개.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가게로부터 부품비용조차 받지 않는다.

올해 초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나 아니면 누가 아름다운 가게에 들어오는 시계들을 고치나’란 생각에 병원으로도 시계를 가져가 고쳤다는 강씨는 최근에는 아예 2시간 일찍 출근하고 일과 후 밤 11시까지 기증된 시계들을 고치고 있다. 그런 그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가게는 지난 16일 감사장을 강씨에게 전달했다. “비록 내 몸이 불편하지만 내가 살면서 주변에서 도움 받아온 걸 생각하면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기술로 보탬이 된다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 어느 종교보다 보시와 자원재활용에 앞장서야 할 불자들이 낡은 물건 사기를 꺼리거나 기증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평생 탁발을 하고 시체 싼 옷으로 가사를 해 입으셨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은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4-12-20 오후 8: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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