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단지 스님이 되고 싶어 대학을 중퇴하고 부모를 떠나 산중의 절에 들어갔다. 그 절에서 행자생활을 마치고 수계 전에 은사를 지정해 주었다. 미리 정해 놓은 은사가 없어서 산중에서 지정해 준 것이다.
딸의 은사는 토굴하나 없이 평생을 선방에서 정진한 스님이라 그 동안 주지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 스님이 물욕이 없는 매우 훌륭한 수행자라 여겼다.
내 딸은 처음 은사를 따라 선방에 다니다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학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 딸이 공부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학비를 댔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우리 집안의 사업이 부도나 더 이상 학비를 지원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얼마 전에 딸의 은사스님도 입적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은사 스님을 잘 만나면 은사 스님이 학비를 전액 후원해 주고 심지어 해외 유학까지 보내준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속가 부모가 지원해 주거나 아니면 자신이 부전생활 등을 통해 적당히 조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니 학업 계속하기를 원하는 내 딸은 은사 스님을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내 딸의 은사스님은 문중도 변변치 않고 평생 선방 스님으로 생활해서 절이 없어 내 딸이 경제적으로 의지할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딸 아이는 은사도 없고 속가의 부모도 사업이 기울어 경제적으로 후원할 수 없으니 아주 박복한 스님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평등하게 자비를 구현한다는 도량에서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젊은 스님이 공부하고 싶어도, 후원해 줄 곳이 없다는 사실이 비감스럽다.
종단에 어른 스님들이 먼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치고 평등한 수행생활 속에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법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에서 멍든 상처를 치유해주고 텅 빈 가슴을 메워줄 수 있는 자비 문중이 바로 절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은사제도는 스님들간 불신의 벽이 두터워지고 서로 보이지 않는 세력다툼이 생겨 차별심만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참신한 인재를 키우고 불법이 융성하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은사제도를 폐지하고 본사별로 소속감을 두어 모든 스님들이 평등하게 혜택을 누리는 풍토를 조성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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